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모피 장수 출신의 초대 총독… '알래스카 왕'으로 불렸죠

입력 : 2020.07.15 03:00

알렉산드르 바라노프

최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의 대부분 지역에서 석유 시추를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해요. 약 9만3100㎢에 달하는 알래스카 국립석유보호구역은 북극곰뿐 아니라 순록·물새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중요한 생태 공간인데요.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 구역에 석유 87억배럴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요. 많은 환경단체가 생태계를 해치고 원주민을 위협하는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답니다.

북아메리카 북서쪽 끝에 있는 알래스카주는 18세기 러시아 상인들이 개척했지만, 1867년 미국에 매각되면서 이후 미국 땅이 됐습니다. 알래스카를 처음으로 개척한 사람은 모피 상인 알렉산드르 바라노프(1747~1819)였어요. 그는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처럼 과감하게 알래스카를 정복했지요. 바라노프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모피 무역으로 시작한 식민지 개척

러시아인들이 알래스카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건 18세기 중반입니다.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1672~1725)는 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1725년 탐험가 비투스 베링이 이끄는 탐험대를 파견했어요. 탐험대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해협(육지 사이에 껴 있는 좁고 긴 바다)이 있음을 확인했고 훗날 이곳을 '베링 해협'이라 이름 붙였지요.

1799년 러시아 식민지 알래스카의 첫 번째 총독에 임명된 알렉산드르 바라노프의 초상화(사진 왼쪽)예요.
1799년 러시아 식민지 알래스카의 첫 번째 총독에 임명된 알렉산드르 바라노프의 초상화(사진 왼쪽)예요. 바라노프는 알래스카 남동쪽 싯카섬에 러시아인 정착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래스카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였어요. 사진 오른쪽이 1804년 벌어진 싯카 전투를 그린 그림이에요. /위키피디아
1733년 두 번째로 파견된 베링 탐험대는 1741년 알래스카를 발견한 뒤 해달의 모피를 싣고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 해달 모피가 아주 부드러우면서 따뜻하다는 호평이 퍼지면서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요.

해달 모피가 풍부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많은 러시아 상인이 알래스카에 모여들었어요. 곧 모피 무역소가 설치됐고 알래스카 남부 코디액섬에는 러시아인들의 정착촌이 건설되었습니다. 러시아 상인들은 알래스카 원주민인 알류트족을 시켜 마구잡이로 해달을 사냥하도록 했어요. 물론 그들에게 모피를 사냥해준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지 않았지요.

무리한 포획이 계속되면서 해달의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자, 러시아인들은 원주민들에게 더 깊고 위험한 바다로 사냥을 나가도록 강요했어요. 양측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결국 러시아인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사냥 장비를 파괴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여기에 러시아인들에게 유래한 전염병이 더해지면서 알류트족 인구는 18세기 중반 2만5000여 명에서 19세기 말 2000여 명으로 10분의 1 이상으로 급감했지요.

알래스카 첫 총독은 모피 장수 출신

1799년 러시아 황제 파벨 1세는 알래스카를 개척하고 관리하기 위해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를 설립했어요. 이 회사는 알래스카 모피 무역을 독점하는 특권을 얻는 대신 러시아 정부에 막대한 세금을 내야 했지요. 당시 알래스카에서 성공한 모피 상인이던 알렉산드르 바라노프가 이 회사의 총괄 경영자이자 러시아령 알래스카의 초대 총독으로 임명됐습니다.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는 러시아 정부의 감독을 받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었어요. 또 당시 러시아가 프랑스 나폴레옹과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바라노프는 알래스카에서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라노프는 알래스카 남동쪽 싯카섬에 러시아인 정착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알래스카 원주민 틀링깃족과 전쟁을 벌였는데요. 이를 싯카 전투(1802·1804년)라고 해요. 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바라노프는 모피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더욱 확실히 장악하고 '알래스카의 왕'처럼 군림했어요.

바라노프는 아메리카 대륙에 또 다른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원주민 탐험대를 파견했어요. 태평양 연안을 따라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진출했지요. 새로 점령한 식민지는 러시아 정부가 아닌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지배를 받았어요. 이 때문에 그는 '러시아의 피사로'라고 불리기도 해요. 잉카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탐험가 피사로처럼 알래스카를 정복했다는 뜻이죠. 바라노프는 1819년 총독 임기를 끝내고 러시아로 돌아가던 중 세상을 떠났답니다.

러시아, 알래스카를 매각하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러시아 상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알래스카의 해달 개체 수는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모피로 인해 얻는 수익도 점점 감소했지요. 당시 러시아는 영국·프랑스 등과 크림 전쟁(1853~1856)을 치르느라 재정 상태가 크게 악화된 상태였어요. 러시아는 결국 미국에 알래스카를 매각하기로 했습니다.

1867년 3월 30일 러시아와 미국이 알래스카(당시 152만㎢)를 720만달러(현재 가치로 약 1억달러·1203억원)에 사고파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당시 미국 여론은 쓸모 없는 땅을 비싸게 산 것 아니냐며 부정적이었어요. 하지만 1890년대 말 알래스카 북부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1960년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재평가되었지요. 알래스카는 1959년 49번째 주가 되어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알래스카 매입 반대했던 미국 여론]

러시아와 미국이 알래스카를 두고 매각 협상을 시작하자 미국 언론은 '얼음이 가득한 궤짝이 우리한테 왜 필요하냐'며 비아냥댔습니다. 특히 협상을 이끌던 윌리엄 수어드 미국 국무장관의 이름을 따 알래스카를 '수어드의 아이스박스''수어드의 바보짓' 등으로 조롱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미국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러시아 세력 확대를 막고 캐나다의 영토 확장도 저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이를 강행했다고 해요. 이런 반대 여론 때문에 알래스카 매입 법안은 미국 상원에서 단 1표 차로 가까스로 통과했답니다.


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