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3일 천하 김옥균의 '갑신일록'…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 남겨

입력 : 2020.07.14 03:00

조선시대 회고록

최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쓴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이 큰 화제였어요. 이 회고록은 북·미 정상회담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폭로했지요.

회고록이란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면서 적은 기록으로, 역사적 사건에 직접 관여했거나 아주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들이 쓰는 거예요.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이 자기 삶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많이 남겼는데 명문가 여성들이 쓴 '고행록' '규한록' 등이 있지요. 다산 정약용이 오랜 유배 생활을 마치고 쓴 '자찬묘지명'도 자전적 회고록의 일종이에요. 이와 함께 후세 역사 해석에까지 영향을 미친 회고록도 있었어요.

'갑신일록'에 담은 개화의 꿈

1884년(고종 21년)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을 근대화하려고 했던 정변을 '갑신정변'이라 불러요. 이 사건은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불과 3일 만에 막을 내렸고 김옥균은 일본으로 피신했어요. 이를 '3일 천하'라고 하죠.

[뉴스 속의 한국사] 3일 천하 김옥균의 '갑신일록'…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 남겨
/그림=김영석
약 1년 뒤 김옥균이 일기 형식으로 갑신정변의 계획과 진행, 실패 과정을 기록했는데 이것이'갑신일록'입니다 정변이 3일 만에 실패하고 개화파가 조선을 탈출하기까지 약 38일간의 일들을 적고있어요. 갑신정변과 김옥균의 삶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그러나 일부 날짜가 잘못 적혀있는 등 몇몇 부정확한 기록 때문에 정식 역사 자료로서 가치는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습니다. 또 일본에선 김옥균이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임진왜란 7년의 참혹한 기록

"매번 지난 난중(亂中)의 일을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알지 못해왔다."

조선 중기 때 문신 류성룡(1542~1607)이 반성을 담아 쓴 회고록 '징비록'의 서문에 나오는 한 구절입니다. 조선 14대 왕 선조 때인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일어났어요. 이 전쟁은 1598년까지 7년간 계속되었지요. 당시 류성룡은 도체찰사(전시 최고 군직)와 영의정 등의 관직에 올라 조선군을 지휘하고 있었어요.

전쟁이 가까스로 막을 내린 뒤 류성룡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내려가서 임진왜란 당시 여러 일을 되돌아보며 기록을 했습니다. 기록의 제목은 '지난날의 잘못을 징계하고 살펴서 뒤에 닥쳐올 어려움에 대비하라'는 말에서 따와 '징비록(懲毖錄)'이라 지었고요.

'징비록'은 개인의 회고록이지만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 높은 관직을 맡고 있어서 전쟁의 상황과 조선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어요. 그는 이 책에서 전쟁 과정과 상황, 조선·일본·명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외교전, 당시 백성의 생활 모습과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들에 대한 평가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했어요. 그래서 훗날 '징비록'은 일본·명나라 등에서도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았지요. 17세기 말 일본에서도 '조선징비록'이란 이름으로 출판돼 널리 읽혔고, 우리나라에선 1969년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었답니다.

사도세자의 비극

"경모궁 돌아가신 경위를 내 차마 기록할 마음이 없으나, 다시 생각하니 경모궁 손자이신 순조가 그때 일을 망연히 모르는 것이 망극하고, 또한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하실까 안타까워 마지못하여 이리 기록하나, 그중 차마 못 일컬을 일은 뺀 것이 많도다."

이 책은 조선 22대 왕 정조의 생모이자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閑中錄)'입니다. 여기서 '경모궁'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홍씨의 남편이던 사도세자를 일컫는 말이에요. 즉, 사도세자가 1762년 아버지인 영조의 명령에 따라 뒤주에 갇혀 죽게 된 사건(임오화변)을 기록한 것이죠.

혜경궁은 한중록을 1795년(정조 19년) 회갑인 61세 때부터 쓰기 시작해 67세, 68세, 71세 각각 네 번으로 나눠 완성했어요. 그는 영조와 세자의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과 그에 따른 사도세자의 강박증, 방탕한 생활 등을 언급하며 영조가 세자를 처분한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주장했어요.

다만 일각에서는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던 노론 가문 출신인 혜경궁 홍씨가 몰락한 친정의 입장을 변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것이다' '임오화변이 일어난 지 30년 지나서 쓴 데다, 사도세자의 잘못을 과장했다' 등의 비판도 있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