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16세기 메디치家 딸이 프랑스 왕과 결혼하면서 유럽에 퍼졌죠

입력 : 2020.07.10 03:09

발레(ballet)

붉은 치맛자락을 흔들며 아름다운 여인 '키트리' 역의 무용수가 발랄하게 무대에 등장하네요. 스페인풍 부채로 유혹하듯 춤을 추다가 카리스마 넘치는 매혹적인 포즈로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요. 고전 발레 가운데서도 가장 유쾌하고 화려한 작품으로 손꼽는 '돈키호테' 중 '키트리의 베리에이션'의 한 장면이에요.

최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서 열린 '2020 대한민국발레축제―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는 '돈키호테' 공연을 선보였어요. 오늘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종합예술, 발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게요.

앙리 2세의 왕비가 들여온 '발레'

발레 '돈키호테'는 19세기 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처음 공연됐습니다. 프랑스 출신 무용수이자 '고전 발레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리우스 페티파(1818~1910)가 러시아 황실의 초청을 받고 황실 발레단을 총지휘하며 만들었어요. 세르반테스의 원작 소설 '돈키호테'와 이름은 같지만 이야기는 다소 달라요. 페티파는 일찍이 스페인을 여행하며 보고 들었던 경쾌한 민속춤과 음악을 극중 정열적인 이발사 '바질'과 선술집 딸 '키트리'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게 했죠. 원작 속 돈키호테와 그의 충복 산초 판사는 이 무대 위에서 두 연인 이야기의 조연 정도로 다루어집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이에요. 남녀 주인공이 선보이는 2인무 ‘그랑 파드되(grand pas de deux)’는 발레 공연의 백미로 꼽혀요.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이에요. 남녀 주인공이 선보이는 2인무 ‘그랑 파드되(grand pas de deux)’는 발레 공연의 백미로 꼽혀요. /크레디아

최초의 발레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궁정 연회에서 추던 춤으로 추정돼요. 발레(ballet)라는 용어 역시 '춤을 추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유래하였죠. 이것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은 피렌체 출신의 카트린 드 메디치(1519~1589)의 남다른 발레 사랑 덕분이었어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학문과 예술의 최대 후원가였던 메디치 가문의 딸 카트린은 1533년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결혼했어요. 왕비가 된 그녀는 프랑스 왕실에 조국의 궁정 발레를 소개했지요. 마침 카트린이 결혼한 16세기 프랑스 궁정은 '코트댄스' '궁정댄스'라 불리던 사교댄스가 유행 중이었어요. 카트린이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우아한 춤과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궁정댄스가 만나 지금의 발레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첫 기록은 1581년 '왕비의 발레 코미크'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발레는 1581년 프랑스 국왕 앙리 3세(앙리 2세의 아들) 때 파리 궁정에서 결혼 축하연으로 공연된 '왕비의 발레 코미크'입니다.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를 열었던 '태양왕' 루이 14세 역시 유명한 발레 애호가였어요. 그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를 궁정으로 초청하고 아낌없이 지원했고 본인 스스로도 발레리노(발레 남자 무용수)로 나서길 즐겨했죠. 1661년 무용가 양성기관인 왕립무용학교(Académie Royale de Dance)까지 설립해 무용수 교육에 많은 관심을 쏟았어요. 이것이 현재 프랑스 국립음악무용아카데미인 파리국립오페라(Opéra de Paris)의 전신입니다.

춤과 음악, 미술이 어우러진 종합예술

발레는 대사 없이 무용만으로 주제와 줄거리를 표현하는 극무용입니다. 극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은 마임(무언극·동작과 몸짓만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표현을 해요. 그래서 발레를 춤과 마임,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라고 하죠.

보통 발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발끝으로 아찔하게 서 있는' 발레리나일 텐 데요. 발끝으로 서서 고난도의 춤을 능숙하게 추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고된 훈련을 거쳐야 해요.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굳은살 박인 발가락 사진이 한때 유명세를 탄 적이 있는데, 이 사진 한 장으로 우리는 그녀의 피나는 노력을 짐작할 수 있어요.

발레 감상을 하려면 발레 용어를 알아두는 것이 좋아요. 발레에는 많은 무용수가 등장하는데, 이들을 크게 '솔리스트'와 '코르 드 발레'로 나눌 수 있어요. 솔리스트란 발레에서 중요한 역할을 연기하는 주연 무용수를 의미하고, 코르 드 발레는 뒤에서 군무를 추는 무용수를 가리키죠. 코르 드 발레는 발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솔리스트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고전 발레에는 주인공인 솔리스트(남성 제1무용수와 여성 제1무용수)를 돋보이게 하는 춤인 '그랑 파드되(grand pas de deux)'가 있어요. 남녀 주연 무용수가 사랑을 표현하는 2인무인 '그랑 파드되'는 아다지오, 베리에이션, 코다의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아다지오(느리게)'는 여성 무용수의 춤이 돋보이는 무대예요. 남성 무용수의 지탱을 받은 여성 무용수가 느리고 우아하게 춤을 추죠. '베리에이션(변화)'은 남녀가 떨어진 채 여성이 먼저 춤을 추고, 이어서 남성이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타고 춤을 춥니다. '코다(마지막 절)'는 남녀가 함께 어우러져 빠른 템포로 춤을 추며 극을 최고조로 이끌어요. 오는 18~26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이 무대에 오르니 이번 기회에 발레의 정수를 감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고전 발레의 3대 걸작]

고전 발레란 17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주로 공연된 발레로, 보통 20세기 현대 발레와 비교해서 쓰는 말이에요. 프랑스 무용수 마리우스 페티파가 완성한 '그랑 파드되'를 도입한 게 특징이지요. 19세기 러시아에서 초연된 '백조의 호수(1877년 초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년)' '호두까기 인형(1892년)'을 보통 '고전 발레의 3대 걸작'이라 일컫는데, 모두 '러시아의 국민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작곡과 편곡을 맡았고, 페티파가 안무를 짰답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