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1억년 전 백악기 한반도… 원시 악어가 두 발로 걸어다녔죠

입력 : 2020.07.09 03:05 | 수정 : 2020.07.09 10:01

바트라초푸스 그란디스

국내에서 1억1000만년 전 백악기에 육식 공룡처럼 두 발로 걸었던 '대형 원시 악어'의 발자국 화석이 처음으로 발견됐어요. 두 발로 보행하는 원시 악어가 있었다는 걸 추정하게 해주는 골격 화석은 과거 수차례 발견됐지만, 원시 악어의 두 발 보행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은 전 세계 최초라고 해요.

이 같은 발견은 진주교대 김경수 교수와 미국 콜로라도대 마틴 로클리 교수 공동 연구진이 최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습니다. 원시 악어의 발자국 화석은 공룡과 어떤 것이 다를까요?

경남 사천서 발견된 수백개 발자국

작년 초 진주교대 김경수 교수 연구팀은 경남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의 공사 현장에서 파충류 뒷발자국 화석 수백점을 발견했어요. 발자국 길이는 18~24㎝였지요. 연구팀은 처음에 이 화석을 하늘을 나는 파충류였던 '익룡'의 것이라 생각했다고 해요.

그런데 연구를 진행할수록 이 화석은 익룡보다 원시 악어와 더 비슷한 점이 많이 발견되었어요. 발가락이 오늘날 악어처럼 4개인 데다 첫째 발가락이 가장 짧고 셋째 발가락이 가장 길다는 점이 그랬지요. 결정적으로 이 화석에선 현생 악어의 발바닥 피부 무늬와 일치하는 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뒷발자국 화석의 주인이 몸길이 최대 3m이고, 꼬리와 앞발을 든 채 마치 육식 공룡처럼 뒷발로만 걸었던 '이족 보행 원시 악어'라고 결론지었어요. 발자국 수백개는 악어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며 남긴 것이라는 얘기였죠. 근처 호숫가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크기도 과거 발굴된 원시 악어의 두 배에 달한다고 해요. 이 화석은 '대형 원시 악어'란 뜻의 '바트라초푸스 그란디스(Batrachopus grandis)'라는 학명이 붙었습니다.

백악기를 지배한 공룡

화석이란 과거 지구에 살았던 생명체의 유해나 흔적이 지질에 남아 보존되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몸의 단단한 부위가 화석으로 잘 남지만, 썩기 전에 빠르게 묻힌 뒤 굳어지면 부드러운 부위도 화석이 될 수 있어요.

지금까지 피부나 발자국, 알, 분(똥), 나뭇잎 등 다양한 화석이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었어요. 특히 우리나라는 공룡의 뼈, 알, 이빨, 피부, 분 등이 골고루 발견되었습니다. 경남 고성, 남해, 진주, 마산, 경북 의성, 전남 해남, 여수, 화순 일대에선 다양한 공룡 발자국 화석이 대량으로 발견돼 한반도가 공룡의 천국이었던 걸로 추정되고 있어요.
백악기 한반도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공룡은 지질시대 중 '중생대'에 가장 번성했던 대표적인 파충류예요. 지질시대는 보통 선캄브리아대(약 45억6000만년~5억8000만년 전), 고생대(약 5억8000만년~2억2500만년 전), 중생대(약 2억5000만년~6500만년 전), 신생대(약 6500만년 전~현재)로 나누는데요. 똑같은 중생대라 해도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고생대에 번성했던 양서류에서 원시 파충류가 나타나고, 이 원시 파충류 중 일부가 공룡으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공룡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에도 나타났지만, 백악기에는 정말 지구를 지배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번성했어요. 공룡은 몸통 아래쪽 다리가 잘 발달해서 종에 따라 두 발이나 네 발로 보행할 수 있었습니다. 공룡은 보통 골반을 구성하는 뼈인 장골, 치골, 좌골의 형태에 따라 구분할 수 있는데요. 새처럼 장골이 작고 치골과 좌골이 겹쳐지는 '조반목', 도마뱀과 비슷하게 장골이 크고 둥글며 치골과 좌골이 반대 방향으로 자리한 '용반목'으로 나눌 수 있어요. 잘 알려진 조반목은 트리케라톱스, 스테고사우루스 등이 있고, 용반목에는 브라키오사우루스, 벨로키랍토르, 티라노사우루스 등이 있어요.

네발로 걷던 익룡, 두 발로 걷던 악어

현재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조류(새)는 공룡의 후손이라고 해요. 백악기 말에 육상 생물의 75%가 절멸하는 대멸종이 일어났는데, 이때 용반목의 한 갈래가 살아남아 조류로 진화한 것이죠. 세계 각지에서 깃털을 가진 공룡 화석이 발견되고, 새 몸 구조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공룡 화석이 계속 발견되면서 이런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중생대에는 공룡 이외에도 다양한 파충류가 번성했어요. 익룡과 악어류는 흔히 공룡의 한 종류로 착각하기 쉽지만 분류학적으로 달라요. 먼저 익룡은 공룡과 별도로 진화한 비행 파충류예요. 익룡은 땅에서 이동하는 시간이 적어서 전 세계적으로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는 일이 매우 드물었지요.

그런데 1990년 우리나라 전남 해남에서 아시아 최초로 익룡 발자국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까지 발견된 익룡 발자국 중 세계에서 가장 큰 화석이었지요. 이 발자국 화석에는 '해남이크누스 우항리엔시스(Haenamichnus uhangriensis)'라는 학명이 붙었어요. 익룡은 뒷다리만으로 걷는다는 '이족 보행설'과, 날개에 붙은 작은 발로도 걷는다는 '사족 보행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고 합니다.

원시 악어는 중생대 초인 트라이아스기부터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과학자들은 원시 악어가 주로 두 발 또는 네 발로 걸었고, 현생 악어처럼 몸집이 매우 크며, 육지와 물속을 오가며 살았고, 일부는 육식성으로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네발로 걷는 현생 악어의 조상은 약 9000만년 전 출현했다고 합니다.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