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불교 발원지' 인도의 상징… 사방에 퍼지는 부처의 설법 나타내요

입력 : 2020.06.30 03:05

네 마리 사자상

인도 여권
인도 여권〈작은 사진〉에는 국가 문장(국가나 집단을 나타내는 상징 표지)인 사자상이 새겨져 있어요. 이 석상은 기원전 250년쯤 인도 아소카왕이 사르나트(부처가 첫 설교를 한 장소) 지역에 세운 기둥의 일부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기념비인 오벨리스크처럼 긴 돌기둥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사자상을 설치했지요.

아소카왕은 자신보다 300년쯤 앞서 살다간 부처를 기념하기 위해 이런 기둥을 여러 개 인도에 세웠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후인 8세기 초, 신라 승려 혜초가 이 기둥 중 하나를 직접 보고 '기둥 위에 사자가 있는데 그 기둥이 매우 아름답고 다섯 아름이나 된다'고 인도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에 적었죠.

아소카왕은 불교의 후원자로 유명합니다. 한자 문화권에서 아육왕(阿育王)이라 불리는 그는 기둥 외에도 부처를 기념하는 유적을 많이 남겼어요. 부처의 유골을 여럿으로 나눠 인도 전역에 스투파(유골을 매장한 인도의 화장묘)를 만든 것이 대표적인데 나중에 이를 탑파(塔婆), 더 줄여서 '탑'이라 불렀어요. 그의 포교 노력은 해외에까지 영향을 미쳐 조선시대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부처의 일대기와 설법을 기술한 책 '석보상절'에는 '우리나라 금강산과 전남 천관산에 아육왕탑이 있다'고 적혀 있을 정도예요.
기원전 250년쯤 인도 아소카왕이 사르나트(부처가 첫 설교를 한 장소) 지역에 세운 기둥의 일부인 사자상이에요. 인도의 상징이기도 한 이 사자상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기원전 250년쯤 인도 아소카왕이 사르나트(부처가 첫 설교를 한 장소) 지역에 세운 기둥의 일부인 사자상이에요. 인도의 상징이기도 한 이 사자상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습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위키피디아
그럼 사자상을 찬찬히 볼까요. 아래쪽 받침대에는 황소와 말이 새겨져 있고 코끼리와 사자도 있어요. 이 동물들 사이에 수레바퀴 모양의 물체도 보입니다. 이 동그라미는 '차크라'라 부르는데 인도 국기에도 그려져 있어요. '움직임' 또는 '장애를 넘어 멀리까지 도달함'이란 뜻의 차크라가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 마리 동물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부처가 진리를 설파하는 행위를 진리의 수레바퀴, 즉 법륜(法輪)을 돌린다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부처가 처음으로 깨달음을 설법한 장소인 사르나트에 이 상징이 있는 것이 각별하지요.

시선을 옮겨 받침대 위를 보면 등을 마주 댄 큰 사자들이 보입니다. 평면 그림에서는 세 마리로 보이지만, 입체적으로 보면 네 마리 사자가 조각된 이 구도는 부처의 설법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상징해요. 당시 인도는 신성한 존재를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했어요. 아직 불상이 나오지도 않던 시절이라 부처를 동물상으로, 그것도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사자의 모습으로 간접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우 불교적인 상징인 사자상이 현대 인도의 국가 문장인 점이 이상하지 않나요? 인도가 불교의 탄생지인 것은 맞지만, 현재 인도 국민 대다수(약 80%)는 힌두교를 믿어요. 이슬람교도가 10%를 넘고, 불교도는 전 인구의 1%도 안 되지요. 그런데 아소카왕은 본인이 불교도였음에도 타 종교를 관용하고 보편적 진리와 평화를 강조했어요. 사자상은 아소카왕의 종교적·문화적 관용을 상징하기도 하는 셈이죠. 다인종, 다종교, 다언어 국가인 인도는 이런 아소카왕의 정신을 바탕으로 수립된 나라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