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예쁜 말 바른 말] [146] '피난'과 '피란'
내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70년 되는 날입니다. 전쟁과 관련된 말로 많이 쓰이는 단어 중에 '피난' '피란'이 있지요. 이 단어들은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 '피난(避難)'과 '피란(避亂)'으로 한자도 다르고 쓰임새도 조금씩 달라요.
먼저 '피난'은 '재난(災難)을 피해서 있는 곳을 옮겨 감'이라는 뜻이에요. 예를 들면 '우리 가족은 지난번 물난리 때 인근 초등학교에서 잠시 피난 생활을 했다'와 같이 씁니다. 피난과 비슷한 말로는 '대피, 피신' 등이 있어요.
다음으로 '피란'은 '난리(亂離)를 피함, 또는 난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6·25전쟁이 일어나자 한강을 건너 피란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와 같이 씁니다.
- ▲ /그림=정서용
즉, '피란'에서 말하는 '난리'는 주로 전쟁처럼 큰 규모의 어려운 상황에서 쓰입니다. 그러나 '피난'은 지진·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쓰이고, '피란'보다 의미의 영역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지진이 나자 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다' 같은 문장에서 '피난'을 '피란'으로 바꿔 쓰지는 않지만, '전쟁으로 마을 사람들은 피란을 떠났다' 같은 문장에서 '피란'은 '피난'으로 바꿔 쓸 수 있어요.
피난과 피란을 모두 쓸 수 있는 낱말로는 '피난민/피란민, 피난살이/피란살이, 피난처/피란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에서 비바람을 피해 피신하는 작은 장소를 가리키는 '피난소', 악천후를 피해 배가 임시로 들어가는 항구를 가리키는 '피난항' 같은 경우는 '피란소'나 '피란항'이라고 쓰지 않아요. 이처럼 '피란'과 '피난'은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것 꼭 기억하세요.
〈예시〉
―홍수가 나 임시 수용소가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지자체가 관내 초등학교에 지진 피난용 간이 헬멧을 지원했다.
―삼촌은 고성 산불 이재민의 피난소에서 1주일간 봉사 활동을 하였다.
―우리 할아버지는 1·4 후퇴 때 산골로 피난/피란을 갔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란/피난을 간 것이 잘한 일이냐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그 마을은 전쟁을 피해 탈출한 이웃 나라 난민들의 피란처/피난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