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지하 500m 이상 깊숙이… 10만년은 묻어둬야 안전하대요

입력 : 2020.06.25 03:05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

우리나라 동해안 경주시에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2~4호기가 있습니다. 이 발전소 울타리 안에 다량의 방사능을 띤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맥스터)이 있어요. 현재 이 저장 시설은 95% 정도가 핵폐기물로 가득 차 있고, 앞으로 2년 내 남는 공간이 없어질 것이라고 해요. 이렇게 되면 핵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월성 원전 자체가 가동을 멈춰야 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추가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을 짓기로 결정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난항을 겪고 있어요.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란 무엇이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요?

핵분열로 에너지를 만들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여 있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됩니다. 원자가 가지고 있는 양성자 개수가 고유 원자번호가 되고, 양성자와 중성자 개수를 더한 것이 원자량이에요. 원자력발전에 주로 사용되는 원소인 '우라늄'은 원자번호가 92번이고 원자량이 238입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 중 가장 무겁죠.

우라늄은 중성자와 충돌하면 불안정해져서 둘로 쪼개집니다. 이때 질량의 일부가 2~3개 중성자와 에너지로 튀어나와요. 튀어나온 중성자들이 또다시 우라늄과 충돌하면서 연쇄적으로 핵분열 반응이 일어납니다. 우라늄 1g이 완전히 핵분열하면 석탄 3t을 태울 때와 맞먹는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해요. 이 과정에서 우라늄은 바륨이나 크립톤 같은 핵폐기물들을 내놓습니다.

원전의 약점, 핵폐기물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원자력발전이지만 원전의 부산물인 핵폐기물은 골칫거리입니다. 방사성 폐기물은 발생하는 방사선의 양에 따라서 크게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로 나뉘는데요. 중저준위 폐기물은 방사능 구역에서 작업할 때 입은 작업복, 장갑이나 덧신, 청소할 때 사용한 걸레 등 방사능 함유량이 미미한 폐기물을 말해요. 이 중 불에 타는 물질은 태워버리고 그 재를 드럼통에 넣어서 콘크리트로 꽁꽁 감싼 후 땅속에 묻습니다. 액체의 경우 농축해서 드럼통에 넣어 묻어두거나 화학 처리한 후 대량의 물로 희석해서 방류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아주 엄격한 기준을 지키면서 배출되고 있어요.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문제는 방사능이 매우 강한 고준위 폐기물입니다. 보통 사용후핵연료가 여기에 해당해요. 원전에서 쓰는 핵연료는 일정 기간(경수로 기준 5년 정도) 원자로 안에서 타다 보면 더 이상 충분한 열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원자로에는 세슘, 요오드, 테크네튬 등의 방사성 동위원소(원자번호는 같지만 원자량이 다른 원소)들이 남지요. 이때 새 연료로 교체하고 기존 연료를 버려야 하는데, 사용 후 연료라도 방사능 함유량이 아주 높아요. 테크네튬의 경우 방사성 물질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인 반감기만 21만 년에 이를 정도로 길어요. 이 폐기물은 모두 많은 양의 방사선을 내뿜는데, 특히 베타선이나 감마선 같은 방사선은 몸속으로 침투해 인간 DNA에 해를 입히거나 신체 조직을 파괴합니다. 그 피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건에서 보듯 무섭고 오래갑니다. 보통 방사성 물질의 양은 10만 년 정도가 지나면 자연 방사능 수준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방사성 폐기물은 수만 년 정도 생태계와 분리해서 보관해야 한다고 합니다.

10만년 견디는 영구 처분 시설

안타깝게도 인류는 사용후핵연료를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가두어 둘 근본적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전 세계가 60년 넘게 원자력발전을 하고 있지만 계속 임시 저장만 하고 있어요. 과학계에서는 해양 처분, 빙하 처분, 우주 처분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했지만 여러 위험 부담 때문에 실현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다나 빙하에 가두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까 우려되고, 우주로 날렸다가 만에 하나 지구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재앙이기 때문이에요.

현재 유일하게 시도되고 있는 방식은 땅속 깊이 묻어두는 '심층 처분'입니다. 지하 500m가 넘는 깊은 땅속 안정된 지층에 터널을 뚫고 방을 만들어 여러 겹으로 방벽을 치고 폐기물이 반감기가 지나 안전해질 때까지 격리하는 방법입니다. 폐기물 주변에는 금속 용기, 완충재 등 공학적으로 견고한 방벽을 치고, 주변의 단단한 암반이 천연 방벽이 되도록 설계하는 거죠. 하지만 수만 년을 견디는 보관 용기와 지하수가 전혀 흐르지 않는 땅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해요. 미국도 2000년대 네바다주 소금사막을 고준위 폐기물 영구 저장 시설로 선정했다가, 그곳에서 물이 흘렀던 자국 등을 발견해 건립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세계는 핀란드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핀란드가 남서부 해안도시 에우라요키에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 시설인 '온칼로(Onkalo)'를 짓고 있기 때문이에요. 2004년부터 건설을 시작한 온칼로는 현재 18억년 된 단단한 화강암 지층 위에 지어지고 있습니다. 화강암을 5㎞ 길이 터널로 파고 들어간 뒤 지하 500m 깊이에 폐기장을 짓는 일이라서 매우 어려운 공사라고 해요. 폐기물은 철과 구리로 만들어진 지름 1m, 길이 3~5m 크기의 구조물에 넣은 뒤 그것을 또 완충재로 감쌉니다. 오는 2024년 완공될 예정인 온칼로에는 향후 100년간 핵폐기물 6500t을 저장하게 되고, 다음 세기에 봉인해서 10만년을 견디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주일우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