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건축·디자인이야기] 검은 화강암 140개 이어붙인 기념비… 5만8000여명 이름 새겼죠

입력 : 2020.06.17 03:05

미국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

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후대에 남기려 기념물을 세웁니다. 프랑스 군대와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승리한 영국 넬슨 제독을 기념하는 '넬슨 기념탑',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이오시마 상륙 작전을 기념하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해병대 전쟁 기념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기념물들은 눈에 띄는 크기와 극적인 묘사로 큰 감동을 선사하지요.

그런데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는 기존 통념을 깨뜨린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사실 베트남전은 미국인에게 뼈아픈 상처예요.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약 11년간 참전하며 수천억달러의 천문학적인 돈과 270여만명의 군인을 전쟁에 투입했지만 결과는 30만명의 부상자, 5만8000여명의 사망자, 그리고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미국의 첫 패배라는 꼬리표였지요.
광택 처리된 검정 돌에 비친 관람객들의 모습과 V자를 거꾸로 뒤집어 땅을 판 듯한 기념비의 모습.
(사진 위부터) 광택 처리된 검정 돌에 비친 관람객들의 모습과 V자를 거꾸로 뒤집어 땅을 판 듯한 기념비의 모습. /위키피디아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얀 스크럭스는 전쟁이 미국에 남긴 상처를 치유하고자 의회와 정부를 설득해 1980년 7월 워싱턴 DC 링컨기념관 근처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을 공모했죠. 공모전의 조건은 간단했습니다. 묵상적일 것, 주변 환경과 조화로울 것, 참전 용사들의 이름이 들어갈 것,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지 않을 것이었죠. 정치인을 배제한 전문가 8명이 총 1421점의 디자인을 심사한 끝에 1981년 당선작을 발표했습니다. 예일대에서 건축을 전공하던 21세의 중국계 이민 2세 여학생 마야 린의 작품이었어요.

그는 수직성과 영웅심을 강조하는 기존 기념비의 특징은 모두 지우고, V자를 거꾸로 뒤집은 형태로 땅을 길게 절개한 후 아래로 파고드는 벽 디자인을 제시했습니다. 중앙부의 꼭짓점을 기준으로 동쪽 벽은 워싱턴 기념탑을, 서쪽 벽은 링컨기념관을 향하도록 하고, 양쪽 벽의 높이가 점점 줄어들어 끝에서 땅과 맞닿는 디자인이었지요.

검은 화강암 패널 140개를 이어 붙인 벽에는 당시 집계된 사망자와 실종자 5만7939명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에 맞춰 오목하게 파서 새겨지도록 했습니다. 중앙을 기준으로 동쪽 1번 패널에서 오른쪽 끝 70번째 패널까지 첫 전투 사망자부터 차례대로 새겨지고, 그 명단이 서쪽 끝 70번 패널로 이어져 중앙부 바로 왼쪽 1번째 패널에서 1975년 마지막 전투 때 사망한 군인의 이름으로 끝나는 식이었어요. 중앙에서 시작과 끝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형식이었던 거예요.

당장 미국 전역에서 '검게 째진 치욕의 상처' '기념비가 아닌 묘비' '용사를 모독하는 디자인'이란 비판이 쇄도했어요. 비난이 쏟아지자 린은 TV 토론회에 나와 말했습니다. "기념비의 근본적인 목표는 죽음에 대해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벽에 새겨진 이름이 곧 기념비입니다. 남은 사람과 이름은 서로 교감하고 기억할 거예요."

1982년 기념비가 대중에 공개되자 야유는 사라졌습니다. 광택 처리한 검은 기념비 앞에 선 사람들은 자신을 비추는 벽에서 망자의 이름과 함께 존재하는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유가족들은 전사자의 이름을 탁본하고, 벽에 볼을 문지르고, 대화를 청하고, 꽃을 바치고,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을 떠난 이와 다양하게 교감했지요.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는 이제 연 400만명이 찾는 정서적 명소가 됐습니다.



전종현 건축 디자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