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생전에 왕위 물려준 임금… 조선 태조는 10년간 상왕이었죠

입력 : 2020.06.16 03:09

상왕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시 통도사 인근에 퇴임 후 지낼 사저(私邸)를 지을 것이라는 뉴스가 나와 관심이 쏠렸어요. 사저는 대통령과 총리, 장관 등 고위직 공무원들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정부에서 마련해준 집인 관저(官邸)를 나와 개인적으로 살러 들어가는 집을 말해요.

우리 역사에서도 최고 통치자인 왕이 임금 자리를 다음 왕에게 일찌감치 물려주고 궁에서 나와 다른 장소로 옮겨간 경우가 있었답니다. 이들은 누구이고 어떤 곳으로 거처를 옮겼을까요?

상왕 또는 태상왕으로 불리다

왕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임금 자리를 다음 계승자에게 물려주었을 때 왕위에서 물러난 왕을 상왕(上王)이라고 해요. 상왕을 더 높여 부르거나, 상왕의 전왕이 살아있을 때 그 전왕을 태상왕(太上王)이라고 부르지요.

우리나라 역사에선 왕위 계승자가 왕 자리에 오르면 죽을 때까지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그러나 왕보다 더 큰 권력을 얻은 세력이나 인물이 나와 왕을 강제로 물러나게 하거나, 현재의 왕이 후계자에게 보다 강력하고 안정적인 왕권을 마련해주기 위해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이런 원칙이 깨지기도 했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김영석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제6대 태조왕이 대표적인 상왕인데,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역사서 '삼국사기'와 중국의 역사책인 '후한서'의 기록이 서로 달라요. '삼국사기'에는 '146년 태조왕이 동생 수성(훗날 차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이후 '별궁'에 물러나 조용히 지내다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돼 있는 반면, '후한서'에는 '121년 고구려 왕 궁(태조왕)이 죽어 아들인 수성이 왕위에 올랐다'고 써 있거든요.

897년 왕위에서 물러난 신라 제51대 진성여왕도 '덕이 없어 백성들의 생활이 가난하고 도적떼가 들끓는다며 김요(훗날 효공왕)에게 왕위를 넘기고 6개월 뒤 '북궁'에서 사망했다'라고 삼국사기에 씌어 있어요. 고려 때는 제14대 왕 헌종이 1094년 열한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어리고 몸도 허약해 이듬해 권력자인 숙부(훗날 숙종)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고 전해집니다. 헌종은 왕위에서 물러나 '흥성궁'(아버지 선종이 왕이 되기 전 살았던 집)에서 살다 1097년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어요.

태종과 단종이 살았던 수강궁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왕자의 난'으로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권력을 잡자 1398년 왕위를 둘째 아들 방과(훗날 정종)에게 물려주고 왕 자리에서 물러났어요. 그로부터 2년을 상왕, 8년을 태상왕으로 살았지요.

왕이 된 정종도 1400년 아우인 태종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8년을 상왕, 1년을 태상왕(노상왕)으로 살았고, 태종도 1418년 셋째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4년을 상왕으로 군림했어요. 다만 세종이 즉위한 후엔 태종을 상왕이라 부르고 정종을 '노상왕(老上王)'이라 불렀어요. 상왕보다는 높지만 태상왕보다는 낮게 느껴지는 호칭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태조는 오늘날 창경궁 자리에 있는 '덕수궁'과 고향인 함흥에 있는 본궁, 창덕궁 별전 등에서 살았어요. 정종은 상왕이 된 뒤 '인덕궁'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태종이 이곳을 자주 찾아 잔치를 갖고 형제 간 우애를 나누었다고 해요. 위치는 지금 경희궁과 사직단 사이인 서대문 부근으로 추정돼요. 태종은 상왕이 된 뒤 '수강궁'에서 지냈습니다. 세종이 아버지를 위해 마련한 궁으로 창덕궁 옆에 지었지요.

조선의 제6대 왕 단종은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이 1453년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쥐자 어쩔 수 없이 왕 자리에서 물러나 '수강궁'에 머물렀어요. 상왕이 된 단종은 1456년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몇 달 뒤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태황제'라 불린 고종]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가 됐어요. 하지만 1907년 일제의 탄압으로 황제 자리를 황태자에게 물려줘야 했고, 순종은 고종을 태상황(太上皇)이란 의미로 태황제(太皇帝)라 부르게 했지요. 이후 고종은 덕수궁에 머물다 1919년 1월 21일 갑자기 죽음을 맞았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