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10~50명의 '작은 오케스트라'… 세밀한 앙상블 돋보이죠

입력 : 2020.06.13 03:00

체임버 오케스트라

올해 가장 큰 사회적 화두는 '거리 두기'이죠. 최근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한 오케스트라 음악회에도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무관중 콘서트라 하더라도 단원들의 건강과 안전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의자 간격을 조금씩 벌려 배치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다 보니 연주에 많은 인원이 필요한 대규모 관현악곡보다 소규모로 연주가 가능한 작품들이 무대에 자주 오르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선 경험할 수 없는 작은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작은 오케스트라로 일컬어지는 '체임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에 대해 알아볼게요.

정교한 앙상블 가능한 체임버 오케스트라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보통 '실내 관현악단'이라고 부릅니다. 적게는 10명부터 많게는 50명 정도로 구성되는 소규모 오케스트라이지요. 통상 80명에서 120명이 한데 모여 연주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보다 연주 장소가 대체로 작고 작품들도 달라요.

30여 명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습이에요.
30여 명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습이에요.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규모로 더 정교한 합주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DB
사실 18세기 이전까지 관현악단은 대부분 소규모 관현악단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대중 연주회가 발달하면서 100명이 넘는 대형 오케스트라가 등장했지요. 흥미로운 건 콘서트홀이나 오페라 극장에 좌석이 늘어나고 청중이 더 웅장하고 화려한 음향을 요구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작곡가들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대규모 합주에선 맛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앙상블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한 거지요. 20세기 초 다시 조명된 바로크 음악의 유행도 영향을 끼쳤다고 해요.

대표적인 곡이 체코의 국민 작곡가인 안토닌 드보르자크(1841~1904)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작품 22'입니다.'세레나데'란 원래 연인이 사는 집 창가 앞에서 부르는 저녁의 사랑 노래였지만, 18세기 고전파 시대부터는 서정적이고 듣기 편한 악상을 지닌 여러 악장의 모음곡을 의미하기도 했어요. 1875년, 불과 11일 만에 작곡된 이 곡은 청년이었던 드보르자크의 아름다운 선율미를 맛볼 수 있는데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잘 연주했던 그의 음악적 경험이 잘 녹아 있는 걸작입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차이콥스키(1840~1893)가 지은 '현을 위한 세레나데 작품 48' 역시 인기가 많은 체임버 오케스트라용 작품이에요. 1880년 완성된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늘 존경과 사랑을 보냈던 선배 작곡가 모차르트의 정신을 담았다고 알려지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면의 충동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4번 교향곡 이후 새로운 교향곡 작업에 착수하려다 마음을 바꿔 만든 작품이에요. 그만큼 대곡(大曲)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숨 고르기를 하는 느낌으로 작곡한 사랑스러운 모음곡이지요. 느린 서주(전주의 일종)가 붙은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의 1악장, 왈츠의 2악장, '엘레지(슬픈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3악장과 신나는 러시아 무곡풍의 4악장으로 구성됐어요. 이 작품은 대규모 오케스트라도 자주 연주하지만 사실 작은 편성의 현악 합주로 연주할 때 더 매력적입니다. 한층 정교한 앙상블이 가능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일치된 호흡에서 나오는 순도 높은 울림을 맛볼 수 있거든요.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1843~1907)의 '홀베르 모음곡 작품 40'은 노르웨이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드비그 홀베르 남작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작품입니다. 1884년 완성했고, 다섯 악장으로 구성돼 있죠. 홀베르는 그리그와 같은 고향인 베르겐 출신이라 작곡가가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전주곡, 사라방드, 가보트와 뮈제트, 아리아 등 악장마다 홀베르가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춤곡들의 이름을 붙였어요. 고풍스러우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청명하고 서늘한 느낌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기존 악곡을 편곡한 음악가들

바이올린 둘, 첼로, 비올라가 협연하는 현악4중주곡을 확대시켜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게 만든 작품도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실내 교향곡 작품 110a'는 원래 현악 4중주 8번이었던 곡을 지휘자 루돌프 바르샤이가 체임버용으로 편곡한 거예요. 1960년 발표된 현악 4중주 8번은 작곡가 스스로 '파시즘과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억'이라는 설명을 남겼어요. 과거 기억을 담은 작품답게 기존에 썼던 피아노 3중주 2번, 교향곡 10번, 첼로 협주곡 1번 등에 들어 있는 주요 멜로디들이 다시 등장합니다.

대규모 교향곡을 축소해 체임버용으로 연주하는 곡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이 그 좋은 예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쓰인 그의 교향곡들은 오케스트라에서 쓰는 모든 악기가 총동원되는 것은 물론, 실제 소의 목에 거는 방울이나 나무망치 등도 동원해 특이하고 강한 음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의 '교향곡 4번'은 다른 작품에 비해 부드럽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아기자기한 앙상블이 많이 등장해 소규모 실내악으로 편곡하는 데 비교적 쉬워요.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4악장에 등장하는 '천상의 삶'이라는 제목의 소프라노 독창인데요. 독일 민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가져온 가사가 티 없이 순수한 어린이의 시선으로 천국의 즐거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오는 18~19일 14명이 연주하는 서울시향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기도 해요.

그의 또 다른 걸작 '대지의 노래'도 실내악 버전이 있어요. 중국 문인 이백, 맹호연, 왕유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해 가사로 만든 이 작품을 실내악용으로 만든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 대작곡가 아널드 쇤베르크(1874~1951)였어요. 쇤베르크의 정성 어린 편곡으로 원곡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고도 말러 특유의 염세적인 표현과 서정성을 잘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폭발적이고 우렁찬 음향, 은밀하면서도 정교한 앙상블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작품들은 수많은 클래식 작품 가운데 숨어 있는 보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차분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즐거움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