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가 만든 차별"… 여성해방운동의 토대 됐죠

입력 : 2020.06.10 03:00

여성의 종속

남성과 여성을 둘러싼 오늘날의 사회적 관계-다시 말해 한쪽이 다른 한쪽에 법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만들어낸 원리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인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 중 하나이다.

'자유론'으로 유명한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Mill·1806~1873)이 1869년 출간한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은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책이에요. 20세기 들어 활발해진 여성해방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는 평을 받는 고전(古典)이죠. 밀은 여성과 남성에 상관없이 인간이면 존중받아야 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해요. 지금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19세기 여성은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의붓딸 헬렌의 사진이에요.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의붓딸 헬렌의 사진이에요. 헬렌은 당대 여성주의 작가로 활동하며 아버지 밀의 작업을 도왔어요. 오른쪽은 '여성의 종속' 초판 표지. /위키피디아
밀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의 인식은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가 조작해낸 것이라고 주장해요. 여자가 남자보다 능력이 없다는 것도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환경과 교육의 차이'일 뿐이라고 강조하죠. 충분하게 교육받을 기회가 있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즉 참정권을 보장하면 여성도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밀은 역사 이래 권력에 도취되었던 남성들, 쉽게 말하면 힘 좀 세다고 여성들을 못살게 굴던 남성들에게 반성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해요.

밀은 여성을 차별하지 않아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었어요. 여성이 교육을 받으면 인격이 발전할 것이고 사회 참여 기회도 확대됩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면 더 자유로운 경쟁이 촉진되고 결과적으로 사회는 지금보다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여성의 종속'을 존 스튜어트 밀의 모든 사상이 담긴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해요. 밀은 이보다 앞서 출간한 '자유론'(1859년)에서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자유와 인간 본성, 사회와 경제적 효용 등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다뤄요.

'여성의 종속'이 출간된 지 15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그때와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밀은 남녀 간 불평등이 인간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라고 했는데, 그 장애물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요. 지금 미국은 흑인 차별 문제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지요. 남녀 차별이든 인종차별이든 모든 차별은 사라져야 합니다. 밀에 따르면 그래야 인간 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이에요.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