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여성 혼자 여행할 수 없던 조선시대… 남장 하고 꿈 좇아 떠난 14세 금원이

입력 : 2020.06.09 03:00
오래된 꿈|홍경의 글|김진이 그림|보림|204쪽|1만2000원

'오래된 꿈'
/보림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합니다. 보는 눈이 넓어지고 인간과 지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지요. 여행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그러나 누구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발전 정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편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기준으로 살펴봐도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교통수단의 발달과 더불어 인권도 향상되어 왔지요. 조선시대만 해도 여자는 여행을 다닐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의 여행은 권력자들의 특권이었던 셈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대에 홀로 금강산에 오르고 단양팔경(단양군에 있는 8가지 명승지)을 구경하며 동해 관동팔경(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8곳의 명승지)을 둘러보고 서울까지 다녀간 조선시대 여성 시인 김금원(1817~?)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당시에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14세의 당찬 금원은 여자가 남자처럼 차림을 하는 '남장'을 하고 길을 나섰다고 해요. 오랫동안 꿈을 꾸고, 오랜 시간을 들여 부모를 설득해야 했지만 여행은 그 값을 충분히 했어요.

금원의 어머니는 원래 기생이었습니다. 양반인 아버지의 소실(정식 아내 외에 데리고 사는 여자)이었죠. 종모법, 즉 자녀가 어머니의 신분을 따르는 법에 따라서 금원 또한 기생이 되어야 했어요. 금원의 여행은 기생이 되기 전 마지막 자유를 누리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특해서 글과 시를 배웠던 금원은 기생이 된 후에 여성 시인으로 명성을 누립니다. 이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 시인들과 함께 '삼호정 시모임'을 열어 서로 격려하고 함께 시를 지으며 즐거워했죠.

여행은 14세에 했지만 여행기인 '호동서락기'는 34세에 썼어요. 20년 전의 여행을 쓴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의 감흥이 생생합니다. 여행 중에 썼던 시도 곁들였지요.

당시 여성들은 여행을 못 다닌 것뿐 아니라 작가로 인정받기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기록이 충분히 남아있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작가는 금원의 삶을 충실하게 보여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덕분에 우리는 한 용감한 여행자를 가까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시와 함께요.


박사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