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탁 위 경제사] 도축장서 영감 얻은 포드, 세계 첫 대량생산 시스템 만들었죠

입력 : 2020.06.05 03:09

소고기와 미국 자본주의

최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 감정의 골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둘러싼 책임론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등을 계기로 폭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도 전해지고 있어요.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인 구(舊)소련이 해체되자 세계 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로 재편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군사적 힘이 아무리 커졌다 해도 아직 미국의 맞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지요.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783년 공식 독립한 미국이 불과 240여 년 만에 이처럼 성장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엉뚱하게도 소고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답니다.

◇'소 키울 땅 주겠다'며 이민자 흡수

1775~1783년 영국과 벌인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783년 파리조약으로 독립을 정식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당시 동부 13주로 구성된 면적 40만㎢, 인구 240만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독립을 일군 지도자들조차 미국이 훗날 영국을 따돌리고 세계를 이끄는 강대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Washington·1732~1799)이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는 데 100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1940년대 미국 시카고의 가축 사육·도축장 모습을 찍은 사진이에요.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도축장의 체계적 시스템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자동차 공장에 도입했답니다.
1940년대 미국 시카고의 가축 사육·도축장 모습을 찍은 사진이에요.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도축장의 체계적 시스템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자동차 공장에 도입했답니다. /위키피디아
그러나 미국은 독립 후 100년도 채 되지 않아 1869년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성공합니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를 잇는 약 3000㎞의 철도이지요. 미국은 이를 토대로 중화학 공업을 일으키며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합니다.

미국인들이 미지의 땅 서부로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이보다 조금 앞선 1848년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부터였는데요. 일확천금을 노리던 사람들이 금을 찾아 서부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철도 건설로 서부로의 이동이 쉬워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서부로 몰려갔어요. 황무지에 불과하던 서부는 급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서부에 몰리면서 이내 금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때 새로이 등장한 노다지가 바로 소였습니다. 1860년 당시 유럽에는 탄저병(소·말 등 초식동물에게 발생하는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목축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소고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1863년 미국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농장과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홈스테드법(Homestead Act·택지법)을 제정했습니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지역을 신속히 개발하고 산업자본이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덕분에 많은 이민자가 소나 돼지 따위를 마음껏 키울 땅을 공짜로 얻을 수 있게 됐습니다. 미국은 곧 유럽에 '노동자도 소고기를 먹는 나라'로 소개되었고, 수많은 가난한 유럽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이 시기 미국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이 30%가 넘었다고 해요.

도축장에서 태어난 포드주의

소고기는 미국의 광활한 토지에 유럽 이민자들과 유럽의 대규모 자본을 끌어오는 역할을 했습니다. 소고기 공급이 절실했던 영국 자본은 빠른 수송을 위해 미국의 철도 사업에 투자했지요. 소고기가 미국 철로 발달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에요. 1859년 미국의 민간 철도회사 자본 투자 총액은 약 10억달러였는데, 이는 같은 시기 미국 연방정부 총지출액(1억7200만달러)의 6배에 달하는 규모였다고 해요. 이런 투자 덕에 미국의 철도망은 전국으로 거미줄같이 퍼져 나갔고 1900년에 이르자 미국의 총 철도 길이는 유럽 전체 길이를 넘어서게 됐습니다. 이는 전 세계 철도 길이의 40% 수준이었어요.

미국 경제를 이끌던 철도에 유럽 각국의 돈이 몰렸습니다. 미국 철도 관련 주식은 당시 증시의 블루칩으로 떠올랐습니다. 돈이 몰리자 1860년대 말 미국의 철도회사가 10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우후죽순 생겼어요. 미국은 철도에 몰려든 자본과 인력을 이용해 석유·철강·자동차 등 거대 중화학공업을 일구었지요. 이는 설탕·향신료 등 식민지 플랜테이션(유럽인의 자본·기술과 원주민의 값싼 노동력으로 경작하는 방식) 농업에 몰두하던 유럽의 자본주의와는 다른 성장 방식이었지요. 결국 1860년 세계 4위였던 미국의 총 공업 생산량은 1894년에 이르러 영국을 추월하고 1위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미국 경제에 소가 미친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데요. '자동차 왕' 헨리 포드(Ford·1863~1947)가 1913년 미국 시카고의 도축장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컨베이어 시스템을 자동차 공장에 도입한 거지요. 당시 시카고의 도축장은 소의 도살, 절단, 분류, 세척, 손질, 포장 구역으로 구분됐고 모든 과정은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처리되고 있었어요. 포드는 도축장의 소 해체 과정을 자동차 조립 과정에 정반대로 적용했습니다. 개별 부품을 체계적으로 조립해 하나의 자동차를 완성하는 과정을 구현해내기로 한 거죠. 이렇게 대량 생산된 첫 포드 자동차가 '모델 T'입니다. 여러 컨베이어 벨트를 각각의 근로자 앞에 배치, 분업화를 통해 최종 제품을 완성하는 시스템인데, 이를 '포드주의'라고 하지요.

이 같은 포드의 아이디어로 자동차 1대당 조립 시간이 약 6시간에서 1시간 40분으로 줄어들었답니다. 자동차 생산량도 1910년 1만9000대에서 1914년 27만대로 급증했습니다. 포드 덕분에 자동차는 '부자들의 장난감'을 넘어 '중산층의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포드의 생산 시스템은 자동차를 넘어 의류·식품 등 거의 모든 공정에 적용됐습니다. 지금 인류가 누리고 있는 대량생산의 편리함이 일정 부분 소고기에서 비롯된 것인 셈이에요. 여기서 하나 더.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인 '캐피털리즘(capitalism)'도 '소'를 뜻하는 '캐틀(cattle)'에서 파생된 단어랍니다.



권은중 '음식 경제사' 저자 기획·구성=박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