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허난설헌·허균 오누이의 우애 주고받은 詩와 편지로 담았어요

입력 : 2020.05.29 03:00
'오누이'
/킨더랜드
오누이|허정윤 지음|주리 그림|킨더랜드|64쪽|2만원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죽은 엄마로 변장한 나쁜 호랑이를 피해 어린 남매가 새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호랑이로부터 서로를 아끼고 보호한 오누이의 다정한 우애는 해와 달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설화(說話·사람들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그지없이 다정하고 살가운 오누이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문인(文人·글 쓰는 사람)이자 학자인 허균(1569~1618)과 탁월한 시인인 누이 허난설헌(1563~1589)입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함께 책을 읽고 시를 짓고 호수를 거닐며 달빛 아래 뛰놀았습니다. 무조건 동생 편이었던 누이가 그리워 허균은 시집간 난설헌에게 그리움의 편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던 짧은 생을 뒤로하고 허난설헌은 스물일곱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누이'는 '나의 아우에게' '나의 누이에게'라는 두 이야기를 나란히 한 권에 담은 그림책입니다. 동생을 아끼는 허난설헌의 마음은 그림책 왼편에, 누이를 그리는 허균의 마음은 오른편에 두었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허난설헌의 아름다운 시와 허균의 글들을 어린이 눈높이에 알맞게 풀어냈어요. 누이 난설헌은 야생화를 닮은 동생 균의 파도처럼 거침없고 진솔한 문장을 칭찬합니다. 허균 역시 눈 속에서 핀 난초 향기를 닮은 어여쁜 누이의 아름다운 시와 고귀한 정신을 사랑합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배나무 아래에서 달고 연한 열매를 나누었고, 부용봉에 올라 흰 학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열다섯에 결혼한 누이의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아이들을 잇따라 잃었고 남편과 시댁에서 관심과 사랑도 받지 못했습니다. 엄격한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그녀의 재능은 책망거리로 취급됐습니다. 허난설헌은 붉은 노을 같은 뜨거운 마음을 간직했지만, 서리처럼 차가운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그런 누이를 도와줄 수 없기에 허균은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렇듯 고달픈 삶이었지만 난설헌은 듬직한 어른이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동생을 언제나 응원했습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빛과 온기가 되고자 했습니다.

오누이, 참 다정한 말입니다. 허난설헌과 허균의 못다 한 이야기를 읽으면 은하수 같은 오누이의 고운 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