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고양이가 본 세상… 메이지유신 후 서구 맹신하는 日 사회 풍자
입력 : 2020.05.27 03:0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무튼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데서 야옹야옹 울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간이라는 족속을 봤다.
-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초판본에 그려진 삽화예요.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의 눈을 통해 20세기 초 일본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했어요. /위키피디아
고양이 눈으로 본 세상 사람들은 참 희한한 존재였어요. 고양이의 주인은 중학교 영어 선생님인 구샤미인데, 교양인인 척 고고하게 살면서도 세상의 모순을 향해 한마디 '입을 연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게 꼭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구샤미의 일상은 실제로 낮잠을 자거나 매일 밤 읽지도 않을 책을 침실까지 가져오는, 한마디로 외적인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에요.
풍자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이는 메이테이예요. 메이테이는 미학자(미학을 연구하는 학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서양 것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는 자기가 프랑스의 어떤 유명한 비평가와 동급이라고 주장하면서 철학과 문학에 대한 장광설(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늘어놓죠. 하지만 대개는 근거가 희박한, 자신이 부풀려낸 말이었어요. '그리스 신화'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아내에게 헤라클레스와 헤파이스토스 이야기를 들먹이며 자신의 지적 능력이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이죠. 아무런 죄책감 없이 거짓말도 잘하는 사람이 바로 메이테이예요.
이 밖에 가네다 일가도 등장하는데, 이들은 돈이라면 양심도 팔 사람들이에요. 가네다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자만심이 크다며 '무턱대고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 덤비는 사람들'로 매도해요. 성격이 이상한 사람도 등장해요. 구샤미의 제자이자 이학자(자연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간게쓰는 '목매달기의 역학'이라는 해괴한 논문을 썼다고 자랑하는 사람이에요. 가네다의 딸 도미코와 결혼하겠다고 온갖 난리를 치더니 정작 다른 여성과 결혼하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죠.
대개의 소설은 작품의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마찬가지예요. 1868년 메이지유신(일본의 근대화 운동) 후인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은 서양의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받아들였어요. 서양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죠. 거기에다 급격하게 서구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모든 사람이 돈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무력하게 현실에 순응하거나 숨어버렸어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혹시 오늘 우리 시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100년 전 일본 작가의 작품이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와 나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기 때문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