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스포츠로 세상 읽기] 동쪽 원정 가면 승률 15% 낮아져… 생체시계 앞당겨야 하기 때문이죠

입력 : 2020.05.26 03:00

시차와 경기력

우리나라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우승자를 가리기로 했다고 가정해 볼까요? 보통 우리는 홈팀이 경기에서 승리하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점을 고려해서 한국과 이란에서 각각 한 경기씩을 치르자고 하면 공평한 걸까요?

아주 작은 차이가 승패를 결정하는 스포츠에서 해외 원정 경기 때 선수들이 겪어야 하는 시차(時差)는 전체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개최국이 예선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경우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단 한 번밖에 없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당시 레바논 현지에서 훈련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당시 레바논 현지에서 훈련을 하고 있어요. 보통 서쪽으로 원정을 갈 때보다 동쪽으로 원정 갈 때 시차 적응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요. /뉴시스
시차가 클수록, 즉 먼 나라로 가서 경기를 할수록 원정팀이 적응하기 더 어려울 거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방향은 어떨까요? 동쪽에서 왔는지 서쪽에서 왔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까요?

그동안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서쪽에서 원정 온 팀이 동쪽에서 온 팀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해요. 캐나다 퀘백대학의 로이 교수와 포레스트 교수가 2018년 발표한 공동 연구에 따르면 미국 프로농구(NBA), 프로미식축구(NFL), 프로아이스하키(NHL) 경기를 분석해봤더니, 똑같은 3시간 차이인데도 동쪽에서 원정 왔을 때보다 서쪽에서 원정을 왔을 때 원정팀의 승률이 5%에서 최대 15%까지 더 낮았어요. NBA에서 최하위권 팀과 플레이오프(순위결정전)에 진출하는 팀 간 승률 차이가 15%쯤이니 이건 아주 의미 있는 차이입니다.

방향에 따라 시차의 영향이 달라지는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요. 우리 몸의 생체시계(circadian rhythm)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몸의 생화학적, 생리학적, 행동학적 흐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의 24시간에 맞춰져 있어요. 그런데 시차가 나는 곳으로 갑자기 이동할 때 하루가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것에 생체시계를 다시 맞춰야 하죠. 보통 1시간 차이만큼 우리 몸의 시계를 조정하는 데 하루가 걸린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 몸은 생체시계를 늦춰야 하는 서쪽 여행보다 앞당겨야 하는 동쪽 여행을 더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LA에 사는 사람이 워싱턴D.C(동쪽)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면 시간이 3시간 빨라져요. 이 경우 우리 몸은 생체시계를 3시간이나 앞당겨야 하는데요. 이것이 훨씬 적응하기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반면 하와이(서쪽)로 여행을 가면 현지시간이 3시간 느려지기 때문에 우리 생체시계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서쪽에서 온 팀의 경기력이 조금 더 떨어지는 이유이지요.

그러니 혹시 우리나라 서쪽에 있는 이란 대표팀이 우리나라랑 이란에서 한 경기씩 해서 승부를 가리자고 하면요? 좋은 걸 너무 티 내지 말고 그러자고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