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건축·디자인이야기] 낮에는 재봉사 밤에는 가수로 일하던 소녀, 패션으로 여성 해방시켰어요

입력 : 2020.05.20 03:05

가브리엘 샤넬

샤넬 로고 이미지
최근 패션과 디자인 업계의 큰 뉴스 중 하나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Chanel)의 가격 인상이었어요. 핸드백처럼 인기 있는 제품은 지난해 대비 최고 26%나 올랐는데, 가격 인상 전 샤넬이 입점한 전국 백화점에 영업 개시와 동시에 사람들이 돌진하는 '오픈런(Open run)' 현상이 벌어져 화제가 됐답니다.

이런 화제를 낳은 샤넬을 만든 사람은 '불세출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1883~1971)입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샤넬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수도원의 보육원에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그곳에서 수녀들에게 바느질을 배웠지요. 원래 가수를 꿈꾸던 그는 낮에는 보조재봉사로 일하고 밤에는 카바레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활했어요. 예명인 코코(Coco)도 그 시절 생겼답니다.

샤넬은 1910년 파리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가게를 개업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꽃과 과일 등 장식이 잔뜩 달린 무거운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요. 샤넬은 차양이 짧고 디자인이 단순한 모자를 내놔 주목받았죠. 매출 111억달러(약 13조7000억원·이하 2018년 기준), 영업이익 30억달러(약 3조7000억원)에 달하는 거대한 '샤넬 제국'의 출발이었습니다.
샤넬 로고와 가브리엘 샤넬의 생전 모습.
샤넬 로고와 가브리엘 샤넬의 생전 모습. /샤넬
당시 유럽의 여성복은 활동하기 매우 불편했어요. 날씬한 허리를 만들기 위해 숨을 쉬기도 어려울 정도로 꽉 조이는 코르셋은 필수였고, 풍성하고 긴 치마를 입는 게 예의였죠. 샤넬은 이런 비실용적 패션에 반발했어요. 1913년 처음으로 여유 있는 실루엣의 여성복을 제작했고, 당시 남성들이 스포츠 웨어로 입던 스웨터나 통 넓은 바지를 여성용으로 개량했어요. 1926년에는 입기 편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이며 당시 여성들이 불길하다 치부하던 검은색을 일상복에 과감히 적용했습니다. 또 속옷에만 사용되던 저지를 활용해 편안한 여성 드레스를 만들어 냈고, 바닥을 쓸고 다니던 긴 치마는 무릎까지 올렸습니다. 20세기 초반의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것이에요.

샤넬의 신념은 핸드백에서도 나타나요. 샤넬은 은퇴한 지 10년 만인 1954년 패션계에 복귀해 이듬해 '2.55 플랩 백'을 발표하며 핸드백의 역사를 바꿨어요. 출시일(55년 2월)을 제품명으로 삼아 만든 이 가방은 세계 최초의 어깨끈이 달린 핸드백이에요. 그전까지 여성들은 가방을 손에 쥐고 다녀야 했는데, 샤넬은 핸드백에 금속 줄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성의 양손이 가방에서 해방되는 계기였지요.

"샤넬은 20세기 여성의 취향을 만들었다." 2005년 샤넬 특별전 당시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이 샤넬에 대해 내린 평가랍니다. 샤넬이 남긴 디자인적 유산과 가치는 앞으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듯합니다.


전종현 디자인 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