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의족으로 5373㎞ 달려… 4300억원대 암 연구기금 만들었죠
입력 : 2020.05.19 03:05
캐나다의 '테리 폭스'
장거리 달리기와 농구 선수였던 그는 19세 때 암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고, 이를 계기로 22세 때 암 연구기금을 마련하자는 목표를 내걸고 전국적인 모금 활동을 벌입니다. '희망의 마라톤'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이 캠페인에서 그는 캐나다 횡단을 목표로 매일 42㎞씩 마라톤에 맞먹는 거리를 달립니다. 그가 앞에서 뛰고, 뒤에선 그의 친구와 동생이 차를 몰고 따라오며 모금을 하죠.
그가 이런 모금 활동을 하게 된 데에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얻은 신념이 큰 역할을 했어요. 암으로 인한 사람들의 희생을 줄이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제대로 된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암 연구가 필수적이라는 믿음이었죠. 그렇게 시작된 그의 달리기는 1980년 다섯 달에 걸쳐 143일 동안 캐나다에서 펼쳐집니다. 의족을 한 젊은이가 고통을 참아가며 매일 달리는 모습에 국민도 호응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그의 모금은 2400만캐나다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모으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 ▲ 캐나다 여권 속지에 실린 테리 폭스의 모습. 암으로 다리를 잃은 그는 암 연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의족을 한 채 다섯 달간 5373㎞를 달렸습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폭스는 그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한 해 전에 썼던 편지에서 "저는 19세 때 다리 절단 수술과 1년 4개월의 항암 치료를 겪고 암에서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벗어났다고 해서 암 병동에서 봤던 고통과 절망의 얼굴들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은 어딘가에서 멈춰야 합니다. 저는 그 대의를 위해 저의 한계까지 달릴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각오를 밝혔었죠. 지금도 폭스는 '캐나다의 영웅'으로 불리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1년부터 매년 60국 이상의 나라에서 암 연구를 위한 모금 목적의 '테리 폭스 달리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그의 이름으로 5억캐나다달러(약 4369억원)가 넘는 모금액이 모였다고 합니다.
폭스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생의 몇 개월을 뚝 내어 그를 도왔던 친구와 동생, 폭스의 열정에 감동하여 기업 차원의 지원을 약속한 후 40년째 그 약속을 지키는 기업인, 그리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도로변에 나와 폭스를 응원했던 이름 없는 주부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테리 폭스가 될 수 없고 그럴 이유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의인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디선가 '희망의 마라톤'이 계속된다는 것을 캐나다 여권은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