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이야기] 높은 가지들은 서로 닿지 않으려 하죠… 햇빛 나누는 공존법이래요

입력 : 2020.05.15 03:01

수관기피

광활한 숲과 키가 큰 나무들, 그리고 사이를 흐르는 구불구불한 푸른색 줄기. 얼핏 보기엔 녹지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강의 모습 같지만, 자세히 보면 푸른 줄기 안에 하얗게 들어 있는 구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햇빛이 틈새로 들어와 숲 깊은 곳까지 비추기도 하지요. 바로 키가 큰 나무들이 살아가는 숲의 바닥에서 하늘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숲 꼭대기에서는 종종 '수관기피' 현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수관'은 나무의 가장 윗부분으로, 줄기 끝에 가지와 잎이 달린 부분인데 서로 떨어지려고 기피한다는 겁니다. 가지들이 수줍어하면서 몸을 움츠린 것으로 보였는지, 영어 표현에서는 '수관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라고 합니다.

숲 꼭대기에 나타난 수관기피 현상.
숲 꼭대기에 나타난 수관기피 현상. 수관기피는 햇빛을 골고루 이용하기 어려운 숲 환경에서 식물 공동체가 생존하는 전략입니다. /위키피디아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수관기피 현상을 두고 '나무들도 마치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것 같다'며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었지요.

수관기피는 주로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관찰됩니다. 같은 종의 나무 사이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때로는 다른 종의 나무 사이에서도 발생하고, 한 그루의 나무에서 뻗어 나온 서로 다른 가지에서도 발생하는 신기한 현상이지요. 나무가 자라다 숲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러 서로 가지를 건드렸을 때 가지를 움츠리거나 성장을 멈추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요. 소나뭇과, 두릅나뭇과 식물이나 맹그로브, 녹나무, 유칼립투스류 등 다양한 종에서 수관기피 현상이 관찰됐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식물학자들은 식물 공동체가 햇빛을 골고루 이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식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적외선'을 감지해 상대방 식물이 자신과 얼마나 가깝게 위치하는지 파악한 뒤, 그 식물과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는 방향으로 자라요. 빛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숲 환경에서는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햇빛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고, 더 쉽게 생존할 수 있어 식물이 이런 전략을 택했다는 설명이에요. 수관기피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입니다. 또 바람이 부는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가설도 있습니다. 꼭대기의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부딪혀서 서로 마모되면서 자연적으로 가지치기가 된다는 것이죠.

결국 수관기피는 경쟁이 치열한 숲 환경에서 식물 공동체가 잘 살아가는 방법인 셈입니다. 실제로 수관기피는 해충이나 전염병이 퍼지지 않게 하는 전략으로 설명되기도 하지요. 우리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건강한 사회를 되찾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과 비슷한 셈입니다.


최새미 식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