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객석에 앉은 듯… 뉴욕 링컨센터 공연을 집에서도 즐기죠

입력 : 2020.05.15 03:01

[공연 온라인 중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06년 야구 온라인 중계서 착안해 공연 영상 생중계하거나 녹화 상영
눈 앞에서 즐기는 듯한 현장감으로 인기 얻어 전세계 공연계로 퍼졌고 우리나라 예술의전당 등도 도입

소파에 잠옷 차림으로 편하게 몸을 기대고 노트북을 펼칩니다. 클릭 몇 번이면,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공연장 VIP석에 앉은 것처럼 무대 위에 펼쳐지는 공연을 생생하게 볼 수 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모든 공연이 취소되고 있지만, 최근 세계 일류 공연 단체들이 온라인으로 공연 영상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더 화제가 되긴 했지만, 사실 공연 영상 중계는 꽤 오래전부터 이뤄졌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시초

공연 영상 중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세계 최고 오페라 극단인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메트:라이브 인 HD(이하 메트 라이브)'입니다. 흔히 '더 메트'라고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1880년에 창단해 14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죠. 뉴욕의 링컨 공연 예술센터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연간 200회 넘는 오페라 공연을 무대에 올립니다. 오페라 팬에게도, 뉴욕을 여행하는 관광객에게도 메트 오페라 관람은 꿈의 일정이지요. 하지만 메트의 명성에도 한 차례 고비가 찾아옵니다. 2000년 이전에는 90%를 넘던 티켓 판매율이 2006년에는 77%까지 하락하게 되고 적자만 쌓여가는 위기를 겪어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메트: 라이브 인 HD' 영상 중 '투란도트'의 한 장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메트: 라이브 인 HD' 영상 중 '투란도트'의 한 장면. 지난 2006년 시작된 '메트 라이브'는 집이나 영화관에서도 마치 극장에 간 듯 생생한 공연 실황을 볼 수 있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유튜브 화면
이때 메트를 이끄는 새로운 단장으로 피터 겔브가 취임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죠. 겔브는 메트의 위기 극복의 답을 뉴욕 양키스팀의 온라인 중계에서 찾아내요. 오페라 공연을 고화질(HD)로 생중계하고 전 세계 영화관에서 볼 수 있게 하자! 전 세계 야구팬들이 열광하며 기다리는 야구 중계권을 팔듯이 오페라 영상을 전 세계에 수출한다면 적자도 해소하고 더 많은 관객이 메트의 오페라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이것이 메트 라이브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공연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고, 중계를 하면 공연장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겔브의 아이디어는 적중했어요. 티켓 값이 너무 비싸서 오페라를 접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극장 등에서 생중계를 보기 시작했어요. 집에서도 볼 수 있지만, 스피커 성능이 좋은 극장 등에서는 '더 메트' 오페라 객석에 앉아 있는 듯한 감동을 받을 수 있었죠. 그리고 걱정과 달리 공연장을 찾는 발걸음도 더 늘어났어요. 77%까지 떨어졌던 티켓 판매율이 생중계 이후 오히려 높아져 90% 선을 회복했어요.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등도 온라인 공연 늘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매체와 무대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현장성'에 있어요. 연극이나 뮤지컬은 같은 무대 세트에서 같은 배우가 같은 대사와 동작을 연기하더라도 매 공연이 다를 수밖에 없죠. 이것이 무대 공연만이 갖는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성은 제한된 관객만 무대를 즐길 수 있는 한계가 되기도 해요.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과 같은 외부 환경에 따라 관람에 제약이 생기기도 하고요.

공연 영상 중계는 이 현장성의 제약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현장성을 담아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메트 라이브 성공의 가장 큰 요인 역시 바로 뉴욕 메트로오페라 하우스 객석에 앉아 있는 듯한 생생함을 잘 살려낸 덕분이었어요. 실시간 공연 중계는 실제 공연 현장의 아티스트나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그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중계 PD는 수차례 리허설과 공연을 보고 동선을 파악해서 카메라 촬영 대본을 미리 작성하고 카메라 리허설까지 마치죠. 그리고 공연이 중계되는 날인 'HD데이'에는 10~12대 카메라가 객석에 포진하고, 메트 오페라 하우스 밖에 세워진 중계차 안에서 PD가 가장 좋은 컷을 골라내어 일곱 개의 위성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을 합니다. 일곱 개 언어로 된 자막도 입혀서요. 처음에 공연 생중계에 반감을 표시하던 오페라 배우들도 전 세계 수십만 관객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에 흥분하면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메트 라이브는 현재 60여 국 2000여 극장에서 상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이런 파격적인 시도는 전 세계 공연 문화를 바꾸어 놓았어요. 이제는 많은 공연 단체가 고화질로 생중계하거나, 공연을 녹화하여 영상으로 관객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으니까요. 국내서도 공연장, 연주 단체들이 온라인 공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2013년부터 지역의 문예회관과 영화관에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영상화 사업을 이끄는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돈화문국악당, 국립국악원, 경기도문화의전당 등이 다양한 공연 콘텐츠를 온라인을 통해 소개하고 있어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