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CO2 해결사' 플랑크톤 쑥쑥 자라게 하는 건 고래 똥이래요

입력 : 2020.05.14 03:05

[지구온난화와 고래]

고래 배설물에 함유된 철 성분이 이산화탄소 흡수·산소 배출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 도와 지구온난화 완화하는 데 기여
큰 고래는 CO2를 33t이나 몸에 저장… 고래 수 늘어나도록 노력해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50년 내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사하라 사막에 맞먹는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어요. 전 세계 26국 기후변화 분야 전문가 모임인 GSCC는 지난 5일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70년이면 35억명이 거주하는 지역이 연평균 29도를 넘을 것'이라고 발표했어요. '연평균 29도'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도 일부 고온 지역의 기후 환경과 같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심화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시도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어요. 다양한 방안 중 '고래 수 늘리기'라는 흥미로운 제안이 눈에 띕니다. 지난해 말 국제통화기금(IMF)은 고래를 지구온난화의 구원투수로 꼽으며 고래 한 마리의 환경적 가치가 24억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어요. 고래와 지구온난화는 과연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 고래

고래는 포유강 고래목에 속하는 동물을 통칭해요. 원래는 뭍에 살던 포유류였지만 수중에 살게 되면서 물고기와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됐어요. 앞발은 지느러미와 비슷하게 진화했고, 꼬리 역시 꼬리지느러미로 변형돼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돕습니다. 하지만 고래는 물고기와 엄연히 달라요. 물고기는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지만, 고래는 물 위로 올라와 허파로 숨을 쉬어요. 또 알이 아닌 새끼를 낳고, 새끼에게 젖을 먹여 기릅니다.
고래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고래는 전 세계 100여 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크게 수염고래아목과 이빨고래아목으로 나뉘어요.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고래는 긴 수염이 달려있어서 물을 빨아들이고 난 후 수염으로 거른 크릴을 섭취합니다. 대표적으로 긴수염고래, 밍크고래 등이 있어요. 이빨고래아목에 속하는 고래는 종류에 따라 작은 어류부터 큰 포유동물까지 사냥해서 잡아먹는 특징이 있는데 범고래와 향유고래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는 흰긴수염고래는 최대 몸길이가 33m, 몸무게가 179t에 달해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로 꼽혀요.

1마리당 평생 이산화탄소 33t 흡수

고래의 큰 몸집은 온실가스의 하나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요. 공장·자동차 등에서 화석연료를 태우며 대량으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바다를 산성화하는데, 이는 바다 생물의 생존에 커다란 위협이 됩니다. 모든 생물은 살면서 몸 속에 이산화탄소를 조금씩 축적하는데, 고래는 워낙 몸집이 커서 어떤 동물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고래는 지방과 단백질이 많은 거대한 몸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연간 수t씩 저장해요. 나무 한 그루가 이산화탄소를 연간 최대 약 22㎏ 흡수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지요. 흰긴수염고래처럼 몸집이 큰 고래 한 마리가 일생 동안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는 평균 33t에 달한다고 합니다. 고래가 자연사하면 사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몸속 탄소를 수백년간 가두어 놓게 되지요.

하지만 포경(고래잡이)을 통해 고래를 죽이게 되면 고래 몸속에 있던 대량의 탄소가 밖으로 빠져나오게 돼요. 지난 2010년 미국 메인만 연구소의 앤드루 퍼싱 박사는 지난 100년간 이뤄진 고래잡이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계산했는데, 대략 1억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고래잡이는 고래 개체 수를 줄인다는 점에서도 나쁘지만, 온실가스를 퍼뜨려 환경에 직접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지요.

배설물 속 철 성분이 플랑크톤 성장에 도움

고래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지구온난화를 막는 데 커다란 도움이 돼요. 고래의 배설물에는 엄청난 양의 철과 질소, 인 등이 포함돼 있어요. 지난 2010년 호주 해양생물학자 스티븐 니콜 박사팀이 수염고래류 27마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양의 고래 배설물과 바닷물을 비교해본 결과 고래 쪽에 1000배쯤 철 성분이 많았습니다.

이 풍부한 철 성분은 바닷속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생장에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산해요. 바다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전체 육지 식물이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의 60%에 달합니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동물성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동물성 플랑크톤은 다시 어류 등 바다 생물의 먹이가 돼요.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이산화탄소가 배설물이나 생물 잔해의 형태로 심해저에 가라앉아 수백년간 저장됩니다.

과학자들은 1930년대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철 성분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이후 식물성 플랑크톤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밝혀지면서, 바다에 인공적으로 철 성분을 뿌려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시도가 이뤄졌어요. 지난 2009년 독일·인도·칠레 등의 과학자들이 모여 남극해에 철가루를 뿌린 '로하펙스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바다 300㎢에 철가루 6t을 뿌린 결과, 해조류 등 식물성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어요.

하지만 이런 인공 철가루가 생태계에 생각지 못한 해로움을 줄 수 있어 반대하는 과학자가 적지 않아요. 이런 상황에서 고래 배설물에 철 성분이 많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고래는 온 지구 바다를 누비면서 먹이를 먹고 배설을 해요. 고래 배설물에 포함된 철은 식물성 플랑크톤에겐 최상의 비료가 되지요. 고래 개체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인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