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유겸의 스포츠로 세상 읽기] 시합 날 경기장 주변에 주차하고 벌이는 파티… 15만명 모이기도 하죠

입력 : 2020.05.12 03:07

테일게이팅

'테일게이팅(Tailgating)'이라는 스포츠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영어 단어 'tailgate'의 본래 뜻은 자동차 뒷문 또는 트렁크 뚜껑입니다. 스포츠에서 테일게이팅이란 팬들이 경기 시작 전 경기장 주변 주차장 등에 삼삼오오 모여서 어울려 즐기는 것을 말해요. 트렁크에 있던 준비해온 음식을 차 뒤에 꺼내 놓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는 파티라는 의미에서 테일게이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테일게이팅은 다양한 문화, 오락, 그리고 스포츠 활동을 포함하는 지역 축제로 발전했어요. 사람들은 경기 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간단하게 간이 미식축구 경기를 하기도 하죠. 경기 날에 맞춰서 예술 공연을 하기도 하고, 지역 학교나 자선단체 모금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다목적 축제입니다. 미국에선 미식축구 홈 경기가 2주에 한 번꼴로 주말에(대학은 토요일, 프로는 일요일) 열리는데 미식축구 테일게이팅은 지역 주민들이 기다리는 주말 이벤트예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 뒤에 서서 하는 이 축제의 규모는 소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답니다. 미 플로리다 주립대와 조지아 주립대 정기 라이벌전 테일게이팅에는 8만명이 정원인 경기장 주변에 15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이지요.
미국 프로 미식축구팀 ‘뉴욕 자이언츠’의 팬들이 테일게이팅을 하는 모습. 테일게이팅은 스포츠 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차를 세워놓고 음식을 나누며 어울리는 것으로, 미국에선 경기 관람 못지않게 중요한 행사로 여겨집니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팀 ‘뉴욕 자이언츠’의 팬들이 테일게이팅을 하는 모습. 테일게이팅은 스포츠 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차를 세워놓고 음식을 나누며 어울리는 것으로, 미국에선 경기 관람 못지않게 중요한 행사로 여겨집니다. /위키피디아
테일게이팅은 다양한 순기능이 있어 미국인들에게 스포츠 행사의 중요한 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기 시작을 기다리는 지루함과 이동, 주차 등 각종 불편한 상황을 묵묵히 견디는 대신, 흥겹고 의미 있게 시간을 활용하는 지역 축제로 바꿔버린 거죠. 또 테일게이팅에서 누리는 다양한 혜택은 스포츠가 가진 약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경기 관람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만족감은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 지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스포츠에서 모든 경기에서 이기는 팀은 없습니다. 결국 팬들이 스포츠 관람 후 실망하는 일을 피할 수 없죠. 하지만 테일게이팅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경기 결과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아요. '조지아 팀이 지긴 했지만, 오늘 정말 즐거운 하루였어'가 주말에 즐긴 스포츠 활동에 대한 느낌일 테니까요.

테일게이팅은 스포츠가 줄 수 있는 혜택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스포츠가 가진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스포츠 경기가 취소되고 그나마 열리는 경기도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하지만 스포츠 경기를 함께 즐기는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하다는 것을 테일게이팅을 통해 알 수 있지요. 오늘부터 가족끼리 좋아하는 스포츠 경기를 틀어놓고 집에서 오붓한 테일게이팅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