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꽃가루를 적으로 간주… 과잉 반응한 '히스타민' 총출동

입력 : 2020.05.07 03:00

[꽃가루 알레르기]
번식 위해 바람타고 이동하는 꽃가루, 우리 몸에 들어오면 면역 체계 발동
반응 과도하면 비염·결막염 등 유발

알레르기 주요 유발 원인인 돼지풀
먹이로 삼는 돼지풀잎벌레를 이용해 꽃가루 82% 줄이는 연구 최근 나와

5월에 들어서면서 낮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는 등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기온이 오르며 곳곳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은 눈을 즐겁게 하지만, 꽃가루 알레르기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도 맞게 되지요. 환절기에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왜 발생하며, 이를 막기 위한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수분 과정에서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

꽃가루를 만들어 다른 꽃에 전달하는 것은 식물들의 가장 대표적인 번식 방법이에요. 다른 꽃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묻는 '수분'이 일어나면, 꽃가루 안의 정핵이 이동해 씨방 속의 밑씨와 만나는 '수정'이 가능해지지요. 그런데 식물은 다른 꽃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수분을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해요.

[재미있는 과학] 꽃가루를 적으로 간주… 과잉 반응한 '히스타민' 총출동
/그래픽=안병현
식물의 수분을 돕는 대표적 매개체로는 곤충, 바람, 물 등이 있어요. 이 중 벌과 나비 등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지요. 이 외에도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이동해서 다른 꽃으로 날아가 안착하는 '풍매화', 흐르는 물을 타고 다른 식물에 전해지는 '수매화'도 있어요. 봄가을에 공기 중을 떠다니며 우리를 괴롭게 하는 꽃가루들은 바로 풍매화의 꽃가루들이지요.

봄에는 참나무, 자작나무, 오리나무 등 주로 나무에서 피는 꽃의 꽃가루가 알레르기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가을에는 돼지풀, 환삼덩굴, 쑥 등의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해요. 특히 국화과 식물인 돼지풀은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자라며, 식물로 인한 알레르기 유발원 중 1순위로 꼽힙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부터 퍼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번식력이 매우 뛰어나 토종 식물의 자생을 방해하고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되어 있어요.

과도한 면역반응이 '알레르기'

그렇다면 꽃가루 알레르기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요? 알레르기는 우리 몸의 면역 체계와 관련이 있어요. 외부의 이물질이 신체에 닿거나 내부로 들어올 때, 만약 우리 몸에 해가 되는 병원체가 유입되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 면역계가 활발히 반응하게 되지요. 그런데 간혹 몸에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아도 면역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반응을 '알레르기'라고 하고,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특정 물질을 '알레르겐'(알레르기 항원)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항원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면역계에서는 그에 대응하는 항체를 만들어요. 항체는 기본적으로 'Y자'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세부 구조와 기능에 따라 IgG, IgA, IgM, IgD, IgE라는 다섯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이 중에서도 알레르기 반응과 주로 관련된 것은 IgE입니다. 특정 물질이 알레르겐으로 작용하는 경우 혈액 속 IgE 수치가 증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혈관을 확장하게 하는 '히스타민'이라는 물질이 나와 기관지를 간지럽히지요. 이 때문에 알레르기 비염, 천식, 결막염, 아토피피부염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히스타민의 작용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약이 바로 항히스타민제입니다. 꽃가루 외에도 알레르겐 종류는 대단히 많고, 사람에 따라 영향을 받는 알레르겐과 알레르기 증상도 천차만별이에요.

돼지풀 없애는 돼지풀잎벌레

2018년 국내 연구에 따르면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 발생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요. 특히 대기오염이 심하거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을수록 대기 중 꽃가루 농도가 높아져서 환자 발생 비율도 함께 증가한다고 해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식물의 생장과 번식에 영향을 주고, 결국 인간의 건강에도 영향을 주는 셈이에요.

그 때문에 꽃가루 알레르기를 줄이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달 22일 돼지풀 꽃가루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되었어요. 국제농업생명공학연구소와 미국과 유럽의 공동 연구진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유럽 각 지역의 돼지풀 꽃가루 분포를 계절별로 감시한 자료와 유럽 전체 296군데에서 꽃가루를 측정한 자료를 분석하고, 이것을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 발생 지도와 비교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돼지풀을 먹는 돼지풀잎벌레를 해당 지역에 도입하였을 때 상황을 시뮬레이션해 보았더니 돼지풀 꽃가루 발생량이 평균 82%나 감소했어요. 일부 지역에서는 100% 사라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방법을 통해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를 연간 1120만명가량 줄이고 관련 의료비를 약 64억유로(약 8조4924억원) 절약할 수 있다고 발표했어요. 환경에 해가 되는 농약이나 기타 화학적 방법 없이도 돼지풀잎벌레가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 수는 물론 건강관리 비용 감소 효과도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