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트럭 방수 덮개가 가방으로 재탄생… 폐제품의 숨은 가치 찾아내요

입력 : 2020.05.06 03:00

업사이클링

최근 삼성전자에서 내놓은 TV 포장 상자가 화제가 됐어요. 골판지로 된 상자에 인쇄된 점들을 이어 선에 맞춰 자른 뒤 조립하면 리모컨 수납함, 잡지꽂이, 심지어 고양이 집까지 만들 수 있어요.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을 적용한 이 포장 상자에 외신들도 관심을 보였어요.

업사이클링이란 말은 '업그레이드(upgrade·성능 개선)'와 '리사이클링(recycling·재활용)'의 조합이에요.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은 뭐가 다를까요? 우리가 재활용품을 버릴 때는 분리 배출을 하죠. 알루미늄 캔, 유리, 플라스틱 용기 등은 높은 열을 가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거든요. 이를 재료 삼아 새 제품을 만드는 게 리사이클링 디자인이에요. 반면 업사이클링은 폐제품 전체나 일부를 그대로 활용해 만드는 걸 말해요. 리사이클링에 드는 에너지를 아끼고 폐제품의 맥락과 가치를 최대한 살리는 거죠.

스위스 업사이클링 가방 브랜드 '프라이타크'의 공장 내부(위).
스위스 업사이클링 가방 브랜드 '프라이타크'의 공장 내부(위). 못 쓰는 트럭 방수 덮개를 가방의 재료로 활용합니다. 아래는 프라이타크의 가방. /프라이타크 홈페이지
환경 문제가 지구 전체의 문제가 되면서 가구, 패션, 액세서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사이클링 디자인이 도입되고 있어요. 가구 분야에선 미국 브랜드 에메코가 단연 선두입니다. 지난 2008년 코카콜라와 협업해 재료의 65%는 코카콜라 페트병 111개, 나머지 35%는 특수 유리 섬유로 만든 '111 네이비 의자'로 세계적 화제가 되었죠. 개인 디자이너가 업사이클링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은 경우도 있어요. 지난 2018년 레바논 디자이너 폴라 사크르는 내전을 겪은 수도 베이루트의 파괴된 건물 콘크리트를 모으고 청동, 목재, 유리, 천 등을 더해 꽃병을 만들었는데 거칠고 우아한 느낌이 공존해 디자인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소품과 패션 분야에서는 스위스의 가방 브랜드 프라이타크가 유명합니다. 1993년 설립된 프라이타크는 오래되어 버려진 트럭의 방수 덮개를 잘라 가방 몸통으로 써요. 얼룩덜룩한 천의 색과 조합이 제각각이라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 되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시랜드 기어도 비슷한 경우에요. 서핑을 즐기던 서퍼와 디자이너가 공동 창업했는데 요트 돛, 현수막, 텐트, 낙하산 등 재료의 기능과 내구성이 뛰어난 폐제품을 재료 삼아 가방으로 새롭게 탄생시킵니다.

우리나라 업사이클링 디자인의 대표 격은 코오롱 FnC의 패션 브랜드 '래코드'입니다. 3년이 지난 FnC 산하 브랜드의 재고를 활용해 새로운 옷의 재료로 씁니다. 재료 손질부터 완성까지 온통 수작업이라 번거롭지만 그만큼 독창적 패션이 나온답니다. 국내 가방 브랜드 에이제로는 해외 유명 브랜드에 납품하는 의류용 가죽 원단 중 샘플용으로 방치한 멀쩡한 가죽으로 가방을 만들고 있어요. 환경 보호와 독창성이라는 두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어 업사이클링 디자인은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