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한 해 600만명 방문하는 대만 최대 호수, 장제스 총통의 별장 있었죠
입력 : 2020.05.05 03:00
일월담
장제스가 중국을 놓고 마오쩌둥과 싸웠던 이야기는 옛날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싸움을 연상시키죠. 장제스가 항우와 달랐던 점은 패배한 뒤에도 후일을 기약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그는 중국 서남 지역에 군의 주력을 두고 있었어요. 퇴각하면서 서남 방면으로 더 깊숙이 근거지를 옮겼을 법도 한데, 바다 건너 대만으로 정부를 옮겼죠. 대만섬이 청일전쟁 이후 일찌감치 일본에 할양되어 50년간 기반 시설이 잘 닦여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기 쉽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고 하죠.
그렇게 1949년 장제스를 따라 중국 본토에서 120만명이 새로 이주해 오면서 대만은 신규 이주자가 14%, 기존에 중국 본토에서 건너와 먼저 정착해 있던 한족 인구가 84%, 그리고 전통 원주민 부족이 2%를 점하는 특이한 구성을 이루며 그 후 역사를 만들어 가죠. 대만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38년간의 계엄령(1949~1987)을 거친 후 민주화를 이뤘고,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하나로 경제성장도 이뤘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의 영향으로 유엔에서 쫓겨나고 미국 등 주요국으로부터 단교를 당하죠.
그사이 중국 본토와 대만 간 관계도 많은 변화를 보였어요. 시기별로 굴곡은 있었지만, 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됐어요. 지난 30년간 통계(1987~2017)에 따르면 중국 본토를 방문한 대만 사람이 누계로 1억명, 대만을 방문한 중국인이 2400만명이라고 해요. 중국 본토 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타계한 장제스 총통이 본다면 놀랄 숫자죠. 일월담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어요. 총통이 조용히 산책을 즐기던 호수는 연간 60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됐어요.
- ▲ 대만 여권 속지에 실리기도 한 대만 최대 호수 일월담의 풍경. 호수 중앙에 있는 작은 섬을 중심으로 동쪽은 해, 서쪽은 달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