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분자를 영하 273도로 냉동… 초전도체 개발에 활용 가능

입력 : 2020.04.30 03:07

[극저온 분자]

절대 0도에 근접한 극저온의 분자… 나트륨 원자·리튬 원자 합친 분자를
차가운 나트륨 원자들과 충돌시킨 뒤 뜨거워진 원자만 제거해 만들어내
전류가 영구히 흐르는 초전도 현상에 활용해 미래 소재 개발에 핵심 역할

이론적으로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 0도'에 가까운 극저온 분자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졌어요. 매사추세츠공대(MIT) 볼프강 케테를레 교수팀과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손형목 연구원이 그 주인공이에요. 이들은 공동 연구를 통해 금속 분자를 극저온까지 냉각하는 데 성공해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이달 초 발표했어요. 극저온 분자는 어떻게 만들고, 어떤 분야에 활용될까요?

극저온에서 나타나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현상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온도를 나타낼 때는 도(℃)를 단위로 하는 섭씨온도를 사용해요. 반면에 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켈빈(K)을 단위로 합니다. 0(제로)K는 '절대 0도'라고 하고, 섭씨로는 영하 273.15도에 해당해요. 0K는 분자나 이보다 작은 단위인 원자(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에너지가 최솟값이 되는 온도예요.

물질은 보통 기체, 액체, 고체 중 하나의 상태로 존재해요. 물질 온도가 낮아질수록 기체에서 액체, 고체로 점차 상태가 바뀌는데, 이 과정에서 물질 내 원자의 움직임은 점점 약해집니다. 그런데 절대 0도에 가까운 극저온으로 떨어지면 원자들은 새로운 움직임을 보입니다. 수천~수만 개 원자가 마치 제식훈련하는 군인처럼 하나의 거대한 원자처럼 움직입니다. 이를 '보스-아인슈타인 응축(BEC)' 현상이라고 합니다. 1920년대 인도의 물리학자인 사티엔드라 보스와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함께 연구해 이론적으로 예측한 물질의 상태여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극저온에서 나타나는 초전도 현상

극저온의 세계에서는 여러 기묘한 일이 일어납니다. 전류를 일단 흘리면 영구히 계속 흐르는 '초전도'가 대표적입니다. 초전도란 어떤 온도 이하에서 물질의 전기저항이 0이 되는 현상을 말해요. 초전도 현상은 1911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카메를링 오너스(1853~1926)에 의해 처음 알려졌는데, 그는 차가운 액체 헬륨에 담근 수은의 전기저항이 4.2K에서 4.15K 사이에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지는 것을 발견했어요. 물질마다 초전도가 나타나는 온도는 모두 다른데, 현재까지 금속원소, 합금, 금속화합물, 유기물, 산화물 등 1000종 이상 물질에서 초전도가 확인됐습니다.
극저온 분자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초전도체는 전기저항이 없으므로 고리 모양 회로를 만들면 일단 흐르기 시작한 전류는 영구히 계속 흐르게 됩니다. 이런 성질 때문에 초전도체는 높은 효율의 전자기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초전도체에서 큰 전류를 흐르게 하면 강력한 자기장이 발생하는 전자석도 만들 수 있어요. 초전도체는 초전력 케이블, 자기부상열차, 의료진단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활용 분야 무궁무진한 극저온 분자

케테를레 교수는 지난 2001년 나트륨 원자 10만개를 극저온 상태로 만들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을 물리적으로 구현해 다른 과학자 2명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레이저로 일종의 방을 만들어 원자들을 넣은 다음, 에너지가 높아 고온 상태인 원자들을 계속해서 없앱니다. 동시에 남은 원자들끼리 충돌시킵니다. 상대적으로 고온인 원자와 저온인 원자가 충돌하면 두 원자의 온도는 평균값이 됩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면, 온도가 4인 원자와 3인 원자를 충돌시키면 두 원자의 온도가 모두 3.5가 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두 물체가 충돌하면 열이 나지만, 원자 단위에서는 충돌할 때 열에너지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케테를레 교수와 손 연구원은 처음엔 원자를 냉각한 원리대로 분자의 온도를 낮춰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분자는 원자보다 구조가 훨씬 복잡해서 같은 분자나 원자와 충돌했을 때 가열되거나 화학반응의 결과로 파괴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구팀은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나트륨 원자 1개와 리튬 원자 1개를 결합해 만든 '나트륨-리튬 분자'를 차가운 나트륨 원자들과 일정한 공간에 가둬 충돌시켰죠. 나트륨 원자는 나트륨-리튬 분자보다 온도가 낮기 때문에 충돌하면서 이 분자의 에너지를 빼앗게 됩니다. 이때 온도가 올라가거나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연구팀은 원자와 분자를 같은 방향으로 회전(스핀)하게 만든 뒤 충돌시키면 화학반응 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회전 충돌 방법이 극저온 연구의 핵심입니다. 충돌 후 뜨거워진 나트륨 원자를 레이저로 쏴서 없애버리면 절대 0도에 근접한 극저온의 분자(나트륨-리튬)가 만들어집니다.

극저온 분자는 정보 처리 속도가 수퍼컴퓨터보다 1억배나 빨라 '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양자 컴퓨터 등 최첨단 기기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미래 소재 개발에도 이용될 수 있습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