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짐바브웨의 옛 명칭, 영국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이름서 유래

입력 : 2020.04.29 03:09

[로디지아]

19세기 세실 로즈가 짐바브웨 지역의 광산채굴권 따낸 뒤 백인 대량 이주
지배 강화하며 '로디지아'라 불러… 이후 잠베지강 기준으로 남북 분할
백인 주도로 '로디지아' 세웠지만 흑인 차별 계속돼 1980년에야 독립

아프리카 남부의 짐바브웨는 최근 독립 40주년 축제를 치렀어요. 짐바브웨의 옛 지명인 마타벨렐란드에 있던 원주민들인 쇼나족·은데벨레족 등은 각자 작은 왕국을 건립해 아랍, 포르투갈 등과 광범위한 금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15세기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어요. 하지만 19세기 이후 제국주의의 손길이 아프리카까지 뻗치면서 원주민들은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 독립했어요. 그런데 짐바브웨는 1965년 '로디지아'라는 나라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한 적이 있어요. 로디지아는 어떤 뜻이고 짐바브웨는 어떻게 독립했을까요?

영국 회사에 점령된 마타벨렐란드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가 확대되며 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 외국으로 눈을 돌렸어요. 값싸게 원료와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생산품이 잘 팔릴 수 있는 지역을 찾고자 한 그들의 눈에 띈 것은 아프리카였어요. 유럽 열강 각국에선 아프리카 진출을 통해 제국을 번영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이 등장하였는데 영국의 세실 로즈(1853~1902)는 그중 한 사람이었어요.

1870년대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와 금 채굴을 통해 자산가로 성장한 세실 로즈는 1880년대에 아프리카 지역의 무역을 더욱 확대하고자, 활동 지역에서 사설 군대 등을 보유하면서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하는 회사인 영국남아프리카회사를 설립했어요. 당시 마타벨렐란드를 통치하고 있었던 은데벨레 왕국의 로벤굴라 왕으로부터 광산 채굴권을 받아낸 것을 시작으로 이 지역에 대한 회사의 지배를 확립해갔어요.
영국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를 표현한 그림. 세실 로즈는 1880년대 영국남아프리카회사를 설립해 짐바브웨의 옛 지명인 마타벨렐란드를 지배했고, 회사는 그의 이름을 따 주변 지역에 ‘로디지아’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훗날 북로디지아 지역은 잠비아, 남로디지아 지역은 짐바브웨가 됩니다.
영국의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를 표현한 그림. 세실 로즈는 1880년대 영국남아프리카회사를 설립해 짐바브웨의 옛 지명인 마타벨렐란드를 지배했고, 회사는 그의 이름을 따 주변 지역에 ‘로디지아’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훗날 북로디지아 지역은 잠비아, 남로디지아 지역은 짐바브웨가 됩니다. /위키피디아

이방인의 침략과 지배에 화가 난 원주민들은 백인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이것이 1893년에 있었던 '1차 마타벨레 전쟁'입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화력을 당해낼 수 없었어요. 이후 세실 로즈는 순조롭게 이 지역에 대한 금속, 기타 광물 자원뿐만 아니라 노동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고, 백인들의 대량 이주는 더욱더 늘어났어요. 1895년 영국남아프리카회사는 세실 로즈의 이름을 따 자신들이 지배하는 지역에 '로디지아'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지금의 짐바브웨, 잠비아 등이 속한 지역이죠.

영국서 독립한 '로디지아', 흑백 차별 여전

로디지아는 이후 잠베지강을 기준으로 남·북 로디지아로 분할됐습니다. 남로디지아가 후에 짐바브웨, 북로디지아가 후에 잠비아가 됩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독립이라는 시대적 흐름이 생겼습니다. 영국도 남로디지아의 독립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죠. 그리하여 1946년부터 아프리카인이 스스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남로디지아에서는 백인 농장주 출신인 이안 스미스(1919~2007)가 1962년 백인 우파 정당인 '로디지아전선(RF)'을 이끌고 22만명의 백인을 결집해 196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로디지아'라는 국명의 나라를 세웁니다. 영국 정부의 정책에 반해 소수 백인이 지배하는 독립을 주장한 것이었죠. 일방적으로 추진된 로디지아의 독립은 영국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독립 영웅에서 독재자 된 무가베

백인들의 지배하에 핍박받고 있던 흑인들 역시 로디지아의 독립에 반대했습니다. 흑인들은 치열한 독립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결국 스미스 정부는 혼란을 잠재우고자 1978년 흑인 온건파들과 협정을 맺어 총선거를 실시했어요. 그 결과,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소속인 아벨 무조레와(1925~2010)를 새 총리로 하는 새로운 국가 '짐바브웨 로디지아'가 탄생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각료의 대부분은 백인이었고 '백인들을 위한 정부'였기 때문에 흑인들의 저항 운동은 멈추지 않았어요.

흑인들의 투쟁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로버트 무가베(1924~2019)입니다. 빈곤한 목수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머리가 명석했던 무가베는 남아공으로 유학해 포트헤어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합니다. 넬슨 만델라(1918~2013) 전 남아공 대통령과 동창이죠. 이후 만델라는 변호사, 무가베는 교사가 됐지만 둘 다 백인 정권에 맞선 독립투사로 변합니다. 무가베는 38세인 1960년부터 로디지아 백인 정권에 맞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1964년부터 10년간 감옥에 투옥돼 1974년 풀려났어요.

이후 무가베는 본격적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택합니다. 인접국 모잠비크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주변 공산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백인들에 대한 게릴라 전쟁을 지휘하지요. 이로 인해 로디지아 지역의 혼란이 지속되면서 1980년 영국의 중재로 런던에서 남로디지아 문제 해결을 위한 회의가 열렸고 '랭커스터 협정'이 체결됩니다. 협정에 따라 새 헌법이 만들어졌고, 같은 해 실시된 선거에서 무가베는 63%의 지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신생국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짐바브웨란 이름은 로디지아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의 언어로 '돌로 된 큰 집'이란 뜻입니다. 무가베는 독립 초기 경제 발전을 이끌어 신생 짐바브웨는 '남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37년간 독재자로 군림하다 2017년 그에 반발한 군부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게 됩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