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태양보다 100경배 밝은 빛 쏴 머리카락 10만분의 1 물질 관찰

입력 : 2020.04.23 03:00

[방사광 가속기]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면서 태양광 1억~100경배 '방사광'생산
세포 분열 등 미세구조 분석 가능해 반도체·신약 개발 등에 응용되며 2009년 '타미플루' 만드는 데도 기여

지난 15일 실시한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생소한 단어가 포함된 공약이 등장했어요. 전남, 충북, 강원 등 여러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를 자기들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약속을 내놨습니다. 과연 '방사광 가속기'가 무엇이기에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가속기로 원자보다 작은 입자 관찰

먼저 가속기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세포 구조를 보기 위해서 현미경을 사용하고, 바이러스나 물질의 결정 구조처럼 더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선 전자현미경을 이용합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는 원자 하나입니다. 그것보다 더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서 만든 것이 가속기입니다.

[재미있는 과학] 태양보다 100경배 밝은 빛 쏴 머리카락 10만분의 1 물질 관찰
/그래픽=안병현
본래 원자는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물질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20세기를 전후해 원자보다 작은 전자와 원자핵이 발견되고, 이 원자핵 역시 양성자와 중성자가 뭉쳐 있는 존재라는 것이 알려졌죠. 과학자들은 그것보다도 더 작은 입자가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원자핵을 분석하려면 엄청난 힘을 가해 원자핵을 쪼개야 합니다. 가속기 원리는 양성자나 전자와 같은 입자를 빛에 가깝게 엄청난 속도로 가속해서 원자핵과 충돌시키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파편들의 운동에너지, 위치, 운동량 등을 측정해서 원자보다 작은 구성 물질을 탐구합니다.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중성자와 양성자를 이루는 '쿼크'가 발견됐어요. 이 외에도 '렙톤' '보손' 등 여러 입자의 존재가 밝혀졌습니다.

입자를 빠르게 가속하려면 센 힘을 오래 주어야 하고, 그래서 입자 가속기 크기는 점점 더 커집니다. 1974년에 쿼크의 한 종류인 맵시 쿼크를 발견해서 노벨상 수상 업적을 이룬 미국 스탠퍼드의 선형 가속기는 길이가 3.2㎞였습니다. 길이를 직선으로 한없이 늘리기 어려워, 입자가 지나가는 길을 나선이나 원형으로 설계해서 입자가 지나가는 거리를 훨씬 길게 만들기도 하지요. 스위스 제네바 인근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형 가속기인 거대강입자충돌가속기는 지름이 9㎞, 둘레가 27㎞나 됩니다.

전자 가속하면 강력한 빛인 방사광 나와

그렇다면 방사광 가속기는 무엇일까요? 방사광 가속기는 입자 가속기에서 파생한 가속기입니다. 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면 방사광이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부산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과학자들은 이내 이 방사광이 과학 연구에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방사광 파장은 태양광보다 훨씬 짧아 훨씬 미세한 단위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은 파장이 400~700나노미터(10억분의 1m)인 가시광선이기에 이 범위보다 작은 물체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장이 짧은 빛을 이용할수록 작은 물체 내부 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방사광 빛의 파장은 나노~피코미터(1조분의 1m)로,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극미세구조까지 관찰할 수 있게 해줍니다. 머리카락 10만분의 1 굵기의 물질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지요. 이를 활용하면 단백질 결합 구조, 세포 분열 과정, 나노 소재의 물성 변화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초 연구뿐 아니라 반도체, 신약 개발, 신소재 개발 등 첨단 산업 분야에 응용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방사광을 얻을 목적으로 방사광 가속기를 만듭니다. 방사광 가속기는 선형 가속기, 저장링, 빔라인(소형 실험실)으로 이뤄집니다. 선형 가속기 구간 맨 끝에는 전자총이 있는데, 이 전자총에서 전자를 뿜어내면 전자는 전기장에 의해 빛의 속도로 가속됩니다. 선형 가속기를 내달린 전자는 곧바로 저장링을 10시간 이상 쉬지 않고 돌게 됩니다. 저장링 안에는 전자석이 들어 있는데, 전자는 자기장 속에서 저항을 받으면 운동 방향이 꺾입니다. 전자가 꺾이는 지점에서 강력한 빛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방사광'입니다. 이 방사광을 각 빔라인마다 실험 목적에 맞게 선별해서 끌어다 사용하게 됩니다. 방사광 가속기는 이런 원리로 필요한 빛을 계속해서 만들어 제공하기 때문에 '빛 공장'이라 부릅니다.

방사광 가속기로 세포 들여다봐

방사광 가속기가 이미 이뤄낸 성과도 많습니다. 지난 2009년 세계를 휩쓸었던 신종플루를 진정시킨 '타미플루' 개발에는 미 스탠퍼드대의 방사광 가속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방사광 가속기에서 만들어진 빛을 활용해 바이러스의 단백질 결합 구조를 밝혀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었거든요.

우리나라에는 1995년 포항공대의 부설 기관으로 방사광 가속기가 설치됐습니다. 국내 기술을 이용해 미국·프랑스·이탈리아·대만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건설했죠. 이후 2011년 이 방사광 가속기를 업그레이드해 3세대 원형 가속기를 갖추게 됐습니다. 3세대 가속기는 죽은 냉동 세포만 분석할 수 있지만, 4세대는 실시간으로 살아 있는 세포를 관찰하는 등 분석 수준이 훨씬 높습니다.

정부는 지난 3월 약 1조원을 투입해 방사광 가속기를 새로 갖추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에 갖추는 방사광 가속기는 4세대 원형 가속기로, 포항에 있는 4세대 선형 가속기와 구별하기 위해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로 부르고 있어요.


주일우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