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올리비에상·토니상·몰리에르상, 전설적인 배우들 이름 땄죠

입력 : 2020.04.10 03:09

[세계 3대 공연 상]

영국, 매년 2~3월 로런스 올리비에상 '최고의 햄릿' 배우 기념하며 제정
미국 토니상은 여배우 페리 애칭 따 '연극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려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상, 17세기 극작가 겸 배우 이름 땄죠

'이 하얀 판때기가 3억원이라고?' 어느 날, 25년 된 친구가 그림 한 점을 보여주는데 그저 온통 하얀색뿐입니다. 더욱 황당한 건 이 그림을 3억원이나 주고 샀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최근 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61)의 연극 '아트'(1994)의 묘미는 친구 사이 우정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웃음에 있어요. 레자는 이 작품으로 그해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을 받았고, 2년 뒤 영국 런던에서 공연해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토니상까지 석권하는 기록을 세우죠.

이 상들은 모두 각 나라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그해 해당 국가의 무대에 오른 가장 뛰어난 작품에 상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로 세계 공연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세계 최대 연극 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프랑스의 상이라는 점에서 '세계 3대 공연상'으로 불리지요.

'최고의 햄릿' 기리는 로런스 올리비에상

'로런스 올리비에상'은 '셰익스피어의 대변자이자 최고의 햄릿'이라고 불리며 한 세대를 풍미한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1907~1989)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976년 영국 웨스트엔드 극장 연합회가 처음 제정하고, 1984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로런스 올리비에는 뛰어난 외모와 발성뿐 아니라 탁월한 연기력으로도 유명했어요. 훗날 이별하긴 했지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언 리와 결혼해 세기의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었죠. 그는 살아생전 셰익스피어 작품 중 맡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무대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올리비에의 열정은 지금도 많은 공연예술인에게 귀감이 되고 있지요. 시상식은 매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열리는데 영국 국영방송 BBC가 전국에 생중계합니다.
영국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와 미국 배우 앙투아네트 페리, 프랑스 배우 몰리에르(왼쪽부터). 세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공연상은 각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 배우들의 이름을 따 제정됐습니다. 그해 각국의 무대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에 상이 돌아가지요.
영국 배우 로런스 올리비에와 미국 배우 앙투아네트 페리, 프랑스 배우 몰리에르(왼쪽부터). 세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공연상은 각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이 배우들의 이름을 따 제정됐습니다. 그해 각국의 무대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에 상이 돌아가지요. /위키피디아

연극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

미국의 토니상은 연극과 뮤지컬 분야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합니다. 이 상은 브로드웨이 여배우 앙투아네트 페리(1888~1946)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페리는 명배우이자 연출가였고, 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 아동 구호에 앞장서는 등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토니는 페리의 애칭으로, 'A 페리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1947년에 시작된 토니상은 매년 5월에서 6월 사이에 시상식이 열리는데 유명 배우들의 참석과 화려한 쇼로 유명합니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시상식을 잠정 연기했다고 하네요.

토니상은 선발위원 782명이 참여해 작품상·남녀배우상·연출상 등 모두 21부문에서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둥근 모양의 토니 메달에는 '앙투아네트 페리상'이라는 글자와 함께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의 가면이 새겨져 있는데, 연극의 '비극(tragedy)'과 '희극(comedy)'을 상징하죠.

전문가 1300명 참여하는 몰리에르상

프랑스의 몰리에르상은 1987년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 몰리에르(본명 장 바티스트 포클랭, 1622~1673)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어요. 루이 14세 재임 초기에 작가로서 명성을 떨쳤지만, 배우, 연출가 및 극단장으로도 널리 알려졌어요. 그는 배우로서 1673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연기에 몰두해 진정한 연극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집니다. 몰리에르상은 프랑스 연극사(史)에 비해 비교적 최근에 제정된 편입니다. 이 때문에 초반엔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을 비롯해 작가와 연출가, 비평가, 제작자, 스태프 등 각 분야 전문가 1300여 명으로 이뤄진 '몰리에르 위원회'가 수상작을 선정하면서 공정성과 권위를 인정받게 됐습니다. 매년 4월 말 열리는 시상식은 '몰리에르의 밤(Nuit des Molieres)'이라고도 불리는데, 텔레비전 채널 프랑스 2로 프랑스 전역에 생중계되어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봅니다. 몰리에르상은 보통 다른 시상식과 비슷하게 수상 분야를 발표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1988년에 만들어진 '몰리에르 지역 연극상'이에요. 수도 파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공연되는 연극, 공연 작품 중에서 최우수 작품을 선정해서 격려하는 의미로 수상하죠.

[우리나라에 있는 '이해랑연극상'… 현대 연극 선구자 이해랑 기려요]

우리나라에도 우수한 연극 연출가나 배우 등에게 주어지는 상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국 현대 연극의 선구자인 이해랑(1916~1989)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이해랑연극상'이 있습니다. 이해랑은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에 입학해 연극을 공부했으며, 1938년 귀국 후 극예술연구회의 후신인 극연좌와 극단 고협 등에 가입했습니다. 당시로선 드물게 이론 지식을 갖춘 그는 광복 이후 혼란기를 겪던 연극계에서 정통성을 지키는 역할을 했어요. 연기와 연출을 겸하며 '천사여 고향을 보라' '황금 연못' 등 우수한 작품을 여럿 남겼습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1991년 조선일보와 이해랑연극재단이 주최하는 이해랑연극상이 제정되어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