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미리 만든 구조물을 현장서 '뚝딱' 조립… 26층 건물까지 짓죠

입력 : 2020.04.08 03:00

모듈러 건축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쓰는 가운데, 지난 1월 말 중국 정부는 바이러스의 발원지인 우한을 봉쇄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어요. 이때 평소라면 짓는 데 2년 걸릴 거대 병원 2곳을 10일 만에 세워 세계를 놀라게 했어요. 비결은 '모듈러(modular) 건축'입니다. 모듈러 건축의 핵심은 '사전 제작(prefabrication)'인데요, 현장에 필요한 자재를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조립 가능한 상태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3D(삼차원) 입체 모듈(조립용 구성품)을 완성형이나 반조립 등 상황에 맞게 미리 만든 후, 시공 장소로 옮겨 크레인을 활용해 빠르게 쌓지요. 짧은 시간에도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올해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완공되는 26층 규모의 'AC 호텔 뉴욕 노매드'의 시공 모습.
올해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완공되는 26층 규모의 'AC 호텔 뉴욕 노매드'의 시공 모습.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세계 최고층 호텔입니다. /ⓒSKYSTON
모듈러 건축 역사는 꽤 오래됐답니다. 19세기 미국의 '골드러시' 시대엔 미리 만든 집과 함께 사람들이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기도 했어요. 미국에서 핵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관련된 비밀 주거지를 조성할 때도 모듈러 건축을 활용했어요. 전후 1960년대까지 서민용 모듈러 주택이 유행하기도 했지요. 1970년대 이후 모듈러 건축은 주택, 교육 시설, 병원을 비롯해 호텔, 사무용 빌딩, 정부 기관, 상업 시설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어요.

21세기 들어 모듈러 건축은 인류가 지향하는 건축의 미래로 꼽히고 있어요. 미리 생산한 재료를 현장에서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차곡차곡 쌓기 때문에 교통 혼잡, 소음, 건축 폐기물 등이 생기지 않고, 상황 예측이 가능해 공사 지연과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어요. 또 시공 기간과 비용이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단축되고, 필요에 따라 요소를 바꾸는 등 유연성도 뛰어납니다.

올 9월 뉴욕 맨해튼에서 완공되는 26층 규모의 'AC 호텔 뉴욕 노매드'는 모듈러 공법을 활용한 세계 최고층 호텔입니다. 객실은 폴란드 공장에서 만들어져 화물선으로 옮긴 후 건물 골조와 단단히 조립돼 멋진 호텔의 일부가 되지요. 이 호텔에 전통 공법으로 만든 공간은 식당, 로비 등 몇몇 공용 장소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모듈러 호텔이 있습니다.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국제방송기자단 숙소로 쓰인 '평창 미디어 레지던스 호텔'이 첫 사례인데요.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철강 구조물인 데다 완전하게 해체 후 재구축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모듈러 건축은 3D 프린팅 기술과 엮일 때 미래 건축으로서 갖는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현장에서 재료를 구해 3D 프린터로 구조물을 만들고 이를 조합해 바로 건물을 올리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실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달 탐사 기지 구축을 위한 시나리오의 핵심으로 모듈러 건축을 꼽고 있어요. 모듈러 건축이 바꿀 인류의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