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호랑이 재앙 막아라, 조선시대엔 전담 특공대도 있었죠
[호환(虎患)]
한반도 국토 70% 산으로 이뤄져 예부터 호랑이 많아 피해 컸어요
고려땐 고종의 침전에도 나타났고 선조땐 창덕궁 안에 새끼 낳기도
조선 말 개간 사업으로 서식지 줄고 국가 주도 포획 정책으로 개체 감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민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어요. 그 때문에 거리에 인적이 줄어들자 세계 곳곳에 야생 동물들이 출몰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대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중심가에는 야생 퓨마가, 콜롬비아 보고타의 한 마을에선 여우가, 파나마 해변에는 너구리가 나타나기도 했지요. 우리 역사에서도 사나운 맹수가 마을에 출몰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며 공포를 일으킨 경우가 많았어요.
◇한반도 최상위 포식자 호랑이
한반도에는 먼 옛날부터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이 살고 있었어요. 여러 맹수 중에 우리 조상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는 호랑이였어요. 한반도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백두산, 지리산, 설악산 등 매우 높고 험한 산이 많아서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이 살았어요. 호랑이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피해와 공포가 심해 호랑이에게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것을 '호환(虎患)'이라 부르며 재앙이나 재난으로까지 여겼어요. 그래서 호환은 두창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인 천연두의 별명인 '마마'와 더불어 '호환마마'라고 해서 옛날 사람들이 가장 두려운 것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을 정도였지요.
◇궁궐 안까지 출몰
삼국시대 고구려에는 제28대 보장왕 때인 659년에 호랑이 9마리가 평양성 안으로 들어와서 사람을 잡아먹는 등의 소란을 피웠다는 기록이 있어요. 통일신라에는 제46대 문성왕 때인 843년에 호랑이 5마리가 한꺼번에 왕들의 시조를 모시는 사당인 신궁에 나타난 적도 있어요.
- ▲ 그림=김영석
고려시대엔 제8대 현종(재위 1009~1031) 때 호랑이가 4차례나 개경성 안으로 들어와서 해를 끼쳤고, 제15대 숙종(재위 1095~1105) 때는 호랑이가 성 안은 말할 것도 없고 궁궐의 후원에 있던 정자인 산호정에서도 어슬렁거렸다고 해요. 제23대 고종 때인 1220년에는 임금이 잠을 자는 수창궁 침전에도 나타났다고 해요.
◇조선 고종 때까지 이어진 호환
조선시대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를 시작으로 제26대 고종에 이르기까지 호환이 끊이질 않았어요. '조선왕조실록'에만 호랑이의 출몰과 호환에 대한 사건이 무려 600여 건 넘게 기록되었을 정도였어요. 성종 때에는 경연에서 강희맹이 "황해도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많아 대낮에도 사람을 잡아가니 청컨대 겸사복·착호갑사를 보내어 잡도록 하소서"라고 의견을 냈어요. 겸사복은 임금의 친위 기마병을 말하며, 착호갑사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특별히 뽑아 배치하던 군사를 말해요. 선조 때에는 파주와 고양 등지에서 호랑이가 출몰해 사람과 가축 400여 마리를 죽이기도 했고, 창덕궁 안에서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낳기도 했대요.
조선 말에 이르면서 농지 개간 사업으로 인해 호랑이 서식지가 파괴되고, 호랑이를 잡으면 포상하는 등 국가 정책으로 호랑이의 수가 크게 줄게 됐어요. 또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서 해로운 야생동물을 없앤다며 벌인 해수구제사업에 따라 군대까지 나서서 호랑이 사냥을 벌였어요. 지금은 야생에서 호랑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요.
[대문에 호랑이 그림 붙인 조상들… 재앙과 역병 쫓는다고 여겼대요]
우리 조상은 호랑이에게 해를 입는 것은 크게 두려워하면서도 호랑이를 산군, 산신령이라고 부르며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어요. 호랑이에게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생각해 그림으로 그려 대문에 붙여 놓기도 했지요.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해 일반 민가에서도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여 부정하거나 나쁜 기운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그것이에요. 조선 후기 세시풍속집인 '동국세시기'에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돼 있지요. 또한 조선시대 민간에서는 호랑이 그림을 걸어두면 관직이 높은 귀한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