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RNA 복제 차단하거나 돌연변이 일으켜 바이러스 물리치죠

입력 : 2020.04.02 03:00

[바이러스 치료제]
체내 침입한 바이러스 무력화해 감염 질환 치료하는 항바이러스제
바이러스의 네 단계 증식 과정 중 한 단계에 작용해 증식을 억제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 등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효과 보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코로나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antivirals)를 찾기 위해 당장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안정성이 확인된 약물 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아내는 것이죠.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달 29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을 허가하기도 했어요. 항바이러스제는 어떻게 바이러스를 잡는 것일까요?

돌연변이 잦아 백신 개발 어려워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 감염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체내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작용을 약화하거나 소멸시켜야 할 때 사용하는 약물을 뜻합니다. 바이러스는 혼자서 물질대사를 하지 못하고 숙주(宿主)가 되는 다른 세포에 기생합니다. 그래서 바이러스가 어떻게 증식하는지 생활사가 밝혀지고, 숙주와 다른 체계를 가진 경우에만 항바이러스제 개발이 가능해요. 이제껏 개발된 항바이러스제로는 ▲유행성독감 치료제 ▲B형간염 치료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 등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과학] RNA 복제 차단하거나 돌연변이 일으켜 바이러스 물리치죠
/그래픽=안병현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잠재울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 백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잦은 'RNA 계통 바이러스'라서 백신 개발이 어려워요.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은 물질인 '핵산'은 DNA와 RNA로 나뉘는데, RNA는 이중나선 구조로 꼬여 있는 DNA와 달리 단일 가닥으로 돼 있고, 구조가 안정적인 DNA와 달리 불안정해 변형이 쉽게 일어납니다. 따라서 RNA 바이러스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DNA 바이러스의 10만~100만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힘들게 열쇠를 만들어도 금세 자물쇠 모양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백신 개발이 어렵죠. 이와 달리 항바이러스제 개발은 기존에 나와 있는 약을 갖고 코로나 환자에게 투여해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으로도 이뤄지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한 측면이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4단계 증식 과정

바이러스 증식은 기본적으로 ①숙주세포 내 부착과 침투 ②세포 내에서 탈피(uncoating)로 바이러스 유전체 방출 ③새로운 바이러스 성분 합성 ④합성한 구성 요소를 이용해 바이러스 입자 조립과 방출 등 네 단계를 거칩니다. 항바이러스제는 이 중 한 단계에 작용합니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과 단백질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이 유전물질을 사람 세포 안에 밀어 넣고 사람의 유전물질 합성도구를 훔쳐서 자신의 유전물질과 단백질을 합성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전물질과 단백질이 다시 결합해서 사람의 세포를 터뜨리거나 세포막을 뚫고 나가는 방식으로 다른 세포를 찾아 떠납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이 같은 증식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증식하는 바이러스 생활사의 한 부분을 막으면 바이러스가 제대로 불어날 수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 침투나 유전물질 복제 방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항바이러스 약물들이 공격하는 지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현재 시험되고 있는 약물 중 '클로로퀸'과 'REGN3048' 'REGN3051'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클로로퀸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발됐고, REGN3048과 REGN3051은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때 바이러스를 혈액과 폐에서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었던 약물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해 세포막을 통과하는데, 이 약들은 이 수용체에 붙어서 바이러스와 단백질이 결합하는 것을 막습니다.

바이러스를 막는 또 다른 방법은 바이러스가 이미 세포 안으로 들어와도 유전물질을 복제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치료제로 임상시험이 한창인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나 '갈리데시비르'는 모두 RNA 합성효소에 달라붙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RNA가 복제되는 것을 막습니다. 유전물질을 복제하지 못하면 증식할 수도 없으니, 바이러스는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또 다른 치료약 후보인 '파빌라비르'는 RNA에 붙어서 복제되어 나온 RNA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합니다. 바이러스가 다시 결합되고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유발하기 때문에 코로나 치료제로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현재 코로나와 관련해 시험되는 다른 약물들은 '악템라' '케바자라' 'SNG001' '양수농축액' 등이 있습니다. 이 약물들은 직접적인 항바이러스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바이러스 침투 때문에 생기는 과민한 면역반응이 오히려 염증 등 부작용을 일으켜 장기와 신체의 기능을 해치지 않도록 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일우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