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1929년 미국 증시 붕괴로 시작… 전 세계 5000만 실업자 발생
입력 : 2020.03.25 03:00
[대공황]
10월 주가 12.8% 11.7% 두 차례 폭락… 은행은 파산하고 기업들 노동자 해고
1932년까지 세계무역 60% 이상 감소…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도 영향 미쳐
루스벨트, 구제·부흥·개혁 포함한 뉴딜정책 펼치며 대공황 극복 추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전파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고 있어요. 실직자와 휴직자들이 늘고 경제활동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난 16일엔 미국 대표 주가인 다우지수가 전날보다 12.9%나 떨어지기도 했어요. 1929년 대공황 당시 하루 최고 하락률인 12.8%를 뛰어넘는 수치였죠. 사람들은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경제 위기가 올까 걱정하고 있어요. 1929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대공황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인류사에 큰 영향을 주었던 사건이에요. 이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 시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경제는 호황기를 누렸어요. 하지만 1920년대 말부터 침체기를 맞이합니다. 이 시기 많은 미국인이 돈을 벌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가진 돈을 털어 과열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어요. 주식 가격은 계속 뛰어올랐지만 1929년 여름부터는 소비가 둔화하고 상품이 창고에 쌓이기 시작했죠. 기업들의 빚이 쌓이자 구조 조정이 진행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은 완만한 경기 침체에 들어서고 있었어요.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 시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경제는 호황기를 누렸어요. 하지만 1920년대 말부터 침체기를 맞이합니다. 이 시기 많은 미국인이 돈을 벌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가진 돈을 털어 과열된 주식시장에 뛰어들었어요. 주식 가격은 계속 뛰어올랐지만 1929년 여름부터는 소비가 둔화하고 상품이 창고에 쌓이기 시작했죠. 기업들의 빚이 쌓이자 구조 조정이 진행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미국은 완만한 경기 침체에 들어서고 있었어요.
- ▲ 1931년 대공황 당시 미국 시카고의 무료 급식소에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남성 실업자들의 모습. 1929년 미국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은 약 10년간 지속되면서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2년까지 세계무역은 60% 이상 감소했고, 전 세계 실업자 수는 최대 5000만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키피디아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도 영향
주식시장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대공황 여파로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했고 소비와 투자는 침체됐죠. 은행들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해 파산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과 식량 가격 하락이 겹쳐 농업경제도 파탄이 났지요.
대공황은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정치·경제·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어요. 1932년까지 세계무역은 60% 이상 감소했어요. 전 세계 실업자 수는 대략 최대 5000만명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경기 침체로 사람들 사이에 퍼진 공포감 때문에 각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가 등장하기도 했어요. 특히 독일에서는 민주적인 바이마르공화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안정을 이루어 가던 차에 큰 타격을 입었죠. 독일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경제 위기에 불만을 가지며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극단적인 나치를 지지했어요.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됐어요.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극복
그렇다면 미국은 대공황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1932년에도 미국은 약 1500만명(당시 미국 인구의 20% 이상)이 실직 상태였어요. 이때 민주당 출신 프랭클린 D. 루스벨트(1882~1945)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기며 적극적인 경제 구호 정책을 펼칠 것을 선언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 정책을 펼치기 시작해요. 구제(relief)와 부흥(recovery), 개혁(reform)을 포함해 '3R 정책'이라고도 해요. 테네시강 개발 공사로 대형 댐을 건설하면서 고용을 늘리고, 농업조정법을 만들어 정부가 농업 생산과 소비에 개입했죠. 또 산업부흥법을 통해 정부가 생산량과 최저가격을 정하고 사회보장법으로 실업자나 노인 등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연금을 지급했습니다. 미국은 조금씩 경기를 회복해갑니다. 이후 미국은 자유방임주의에서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로 노선을 바꾸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차츰 대공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루스벨트의 라디오 연설 '노변담화'… 국민들은 대공황 이길 힘 얻었죠]
노변담화(Fireside chats)는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저녁 시간에 미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연설을 말합니다. 총 30회나 이루어졌지요. 루스벨트는 경제 위기를 국민과 소통하며 타개하기 위해 뉴딜 정책과 여러 금융 조치, 2차 세계대전 상황 등의 다양한 주제를 미국 국민에게 친근한 화법으로 설명했어요.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민을 부를 때 '내 친구들(My friends)'이라 칭했고 많은 사람이 이 담화를 통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해요. 'Fireside chats'란 말은 라디오 방송 전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참모들과 벽난로 앞에 모여서 연습했기 때문에 붙은 칭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