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말루쿠서만 나던 향신료… 네덜란드가 독점하려 동인도회사 세웠어요
입력 : 2020.03.24 03:00
정향나무
인도네시아 여권에는 정향나무가 등장합니다. 개화를 앞둔 꽃봉오리의 모습인데,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이 나무엔 특별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나무의 꽃봉오리가 향신료로 쓰이는 데서 비롯된 이야기예요. 15세기 말 서양 각국은 인도에서 나는 향신료인 후추를 확보하려고 인도로 가는 바닷길을 앞다투어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도를 왕래하는 해상 무역로를 만든 서양인들은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도보다 더 동쪽으로 계속 가면 '정향(clove)'과 '육두구(nutmeg)'와 같이 값진 향신료가 무진장 있는 여러 섬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른바 '향신료 제도(spice islands)'였습니다. 이 향신료들을 유럽으로 가져가기만 하면 수십 배 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죠. 그 기회를 가장 잘 살린 나라는 네덜란드였습니다.
- ▲ 인도네시아 여권 속지에 그려진 정향나무의 꽃봉오리(왼쪽). 오른쪽은 정향나무의 모습입니다. 정향나무는 과거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에서 자랐으며, 값비싼 향신료로 취급됐습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향신료는 후추·고추·생강·참깨·계피·마늘·올스파이스 등 다양해요. 그런데 유독 정향과 육두구는 엄청난 경쟁을 불렀어요. 그 이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말루쿠 제도에서만 이 향신료들이 나왔고, 이를 독점하는 것은 천문학적 부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1600년대 네덜란드의 번영은 향신료 무역에 크게 힘입었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날 정향은 어떤 존재일까요? 정향은 이제 더는 고가의 희귀한 물건이 아닙니다.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스리랑카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많은 향신료 중 하나일 뿐이죠. 마치 향신료를 놓고 싸웠던 시절이 세상에 정말 있었느냐는 듯이 세계는 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