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Y염색체가 약해서 남자는 여자보다 평균수명 짧대요

입력 : 2020.03.19 03:05

[성염색체와 수명]

남자 XY, 여자 XX 성염색체 가져
Y염색체, X염색체보다 작고 약해… X염색체는 혈액응고 등 중요 역할
조류와 나비는 성염색체 배열 달라 수컷이 화려하고 수명 차이도 없어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어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죠. 2013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78.5세, 여성은 85.1세로 그 차이가 6.6세나 돼요. 어느 민족이나 여자가 남자보다 6~7년 정도 오래 살죠. 의학 발달의 혜택을 여자만 누리는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럴까요?

Y염색체 때문에 남자가 수명 짧아

최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의 조 시로코스타스 교수 연구팀이 그 원인을 염색체에서 찾았어요. 성염색체 때문에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수명이 17.6% 짧다는 거예요. 포유류·파충류·곤충·물고기 등 동물 229종의 암컷과 수컷의 성염색체 차이를 분석해 나온 결과죠. 이 연구 내용은 지난 4일 영국과학원의 생물학회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렸습니다.

우선 성염색체에 대해 먼저 알아볼까요. 사람은 염색체를 46개 갖고 있어요. 사람이 태어날 때 어머니의 염색체 46개 중에서 절반인 23개, 그리고 아버지 염색체의 절반인 23개를 물려받아 완전한 염색체를 46개 가지게 돼요. 이 중 성염색체는 한 쌍이 있는데, 여자는 X염색체 두 개, 남자는 X염색체와 Y염색체를 하나씩 가져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을 때 아버지가 X염색체를 물려주면 어머니의 염색체와 합쳐 XX가 되어 여자로, Y염색체를 물려주면 XY가 되어 남자로 태어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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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안병현

그렇다면 성염색체의 어떤 성질이 남자의 수명을 더 짧게 하는 걸까요. 연구팀은 남자를 결정하는 Y염색체가 여자의 X염색체보다 훨씬 작거나 힘이 약하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심지어 '독일바퀴(Blattella germanica)'와 같은 곤충은 수컷이 X염색체 하나만 있고 Y염색체가 없는데, 이 때문에 수컷이 암컷보다 매우 작고 연약하며 수명도 77%나 짧았어요. 결국 Y염색체가 작거나 부실한 것이 남자와 여자의 수명 차이를 만드는 것이란 설명이죠.

이는 X염색체가 단순히 성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 따르면, X염색체는 혈액응고, 근육 기능에서 세포의 폐기물 처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일을 담당한다고 해요. 앞서 Y염색체가 수컷 수명이 짧은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다른 연구에서도 많이 제시됐습니다. 그러나 연구 대상 동물의 종이 너무 적거나 하나의 종에서만 암컷과 수컷의 수명 관계를 밝혔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설로만 남아 있었죠. 시로코스타스 교수팀은 역사상 가장 많은 동물종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종의 암컷과 수컷의 수명 차이를 나타낸 연구라서 하나의 학설로 자리 잡기에 충분하다고 합니다.

성염색체 분열 방식이 수명 차이 좌우

그런데 암컷과 수컷의 수명 차이는 동물의 종에 따라 크게 달랐어요. 어떤 종은 큰 차이가 났지만, 어떤 종은 별 차이가 나지 않았죠. 연구팀은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지 궁금했어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229종 동물의 성염색체를 더 세밀하게 분석했어요. 그 결과 암컷과 수컷을 결정하는 성염색체의 분열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조류와 나비는 X·Y에 해당하는 성염색체를 Z·W로 분류해요. X염색체를 물려받아 XX가 되면 암컷이 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조류와 나비는 ZZ일 때 수컷이 되고 ZW이면 암컷이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암컷과 수컷의 수명이 거의 차이 나지 않고, 오히려 수컷이 외형적으로 더 크고 강인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조류와 나비는 수컷이 화려한 몸매와 아름다운 깃털을 뽐내며 암컷을 압도하는 사례가 자주 발견되고 있습니다.

[남자보다 오래 사는 여자… 심장 튼튼한 까닭도 있죠]

시로코스타스 교수의 연구는 Y염색체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그런데 튼튼한 심장의 차이에서 남자와 여자의 수명 차이를 찾아낸 과학자도 있습니다. 영국 리버풀 존 무어스대학의 데이비드 골드스핑크 교수팀은 질환이 없는 18~80세 사이의 남자와 여자 250명을 대상으로 노화가 심혈관 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죠.

그 결과에 따르면 70세 남자들의 심장 상태는 70세 수준인 반면, 70세 여자들의 심장은 20세의 기능과 비슷한 수준이었어요. 남자의 심장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약해져 70세에 이르렀을 때는 심장 근육세포가 최대 25% 상실되었죠. 반면에 여자는 노화에도 불구하고 심장의 기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심장 세포는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조직이 손상되면 복구되지 않아요. 과학계는 이처럼 튼튼한 심장을 여자가 오래 사는 단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