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1979년 시작된 '건축계 노벨상'… 스타 건축가의 산실이죠

입력 : 2020.03.11 03:00

프리츠커상

지난 3일 미국 시카고의 하이엇(Hyatt) 재단은 '프리츠커 건축상(이하 프리츠커상)'의 결과를 발표했어요. 프리츠커상은 매년 3월 수상자가 발표되는 건축계의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별명이 '건축계의 노벨상'이에요. 올해는 지난 40여 년간 아일랜드에서 그래프턴 건축사무소를 함께 운영한 이본 패럴(68)과 셸리 맥나마라(67)에게 상이 돌아갔어요. 아일랜드 국적으론 첫 수상이며, 여성 두 명이 공동 수상하는 것도 처음입니다.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본 패럴과 셸리 맥나마라가 설계한 이탈리아 밀라노 보코니 대학의 전경.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이본 패럴과 셸리 맥나마라가 설계한 이탈리아 밀라노 보코니 대학의 전경. 프리츠커상은 최근 수상자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건축이 지닌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고 있어요. /Federico Brunetti
프리츠커상은 하이엇 호텔의 창업주 제이 프리츠커와 부인 신디가 1979년 만들었어요. 1871년 시카고는 도시를 몽땅 삼켜버린 대화재 이후 재건 과정에서 근대건축의 경연장이 되었어요.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제이 프리츠커에게 건축은 마치 공기와 같은 것이었죠.

그는 1967년 현 하이엇 리전시 애틀랜타 호텔을 열면서 장대한 아트리움(중앙정원)을 선보였는데, 당시 큰 반향이 일면서 이후 호텔의 성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것을 경험했어요. 건축의 힘을 깨달은 그는 제대로 된 건축상을 만들겠노라 결심했죠. 그래서 가문 이름을 따 지금의 프리츠커상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프리츠커상의 철학은 '국적·인종·종교·사상과 관계없이 건축이라는 예술을 통해 인류와 건축 분야에 지속적으로 지대하게 공헌한 생존 건축가에게 수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상은 상금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와 상장, 미국의 유명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디자인한 청동 메달〈작은 사진〉을 수여하는 전통이 생겼어요.

미국의 유명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디자인한 청동 메달
프리츠커상은 그동안 유명 건축가의 산실이었어요. 이오 밍 페이, 프랭크 게리, 안도 다다오, 렘 콜하스, 자하 하디드 등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스타 건축가'들에게 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지난 2009년 변화가 감지됐어요. 스위스에 은둔해 작업하던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수상했거든요. 지난 2017년엔 국제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 건축가 그룹 RCR(라파엘 아란다·카르메 피헴·라몬 빌랄타)이 깜짝 수상하기도 했죠. 이 외에도 남녀 건축가 듀오(SANAA), 중국 건축가(왕수)가 받으면서 다양성이 넓어졌고, 빈민을 위한 건축가(알레한드로 애러비나) 등 건축이 지닌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기 시작했죠.

프리츠커상은 자격증 있는 정식 건축가라면 자기 추천으로 스스로 후보가 될 수 있어요. 여기에 전 세계에서 추천받은 건축가와 전년도 후보자 목록을 합쳐 심사에 들어갑니다. 교수·평론가·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로 수상자를 선정합니다. 특정 건축물이 아니라 건축가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프리츠커상은 수상자 활동 지역의 건축 문화와 수준을 감지하는 척도로 꼽혀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프리츠커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어요. 점차 건축에 대한 관심과 철학이 깊어지는 만큼, 우리도 곧 수상자를 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