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세계 최초로 지구 한바퀴 돈 요트… 英 항해가 프랜시스가 몰았죠
입력 : 2020.03.10 03:05
집시나방 4호
이 할아버지의 정체는 프랜시스 치체스터(1901~1972·작은 사진)입니다. 치체스터는 당시 65세에 세계 최초로 혼자 요트를 타고 세계를 한 바퀴 항해하는 기록을 세웠어요.
그의 항해는 1966년 8월 영국 플리머스 항에서 시작됐어요. 그는 중간 지점인 호주 시드니에 한 차례 기착한 것을 제외하면 온통 바다 위에서 226일을 보냈습니다. 홀로 파도 위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폭풍우와 햇볕, 그리고 입안의 치통과 싸웠습니다. 대양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밤의 공포는 얼마나 컸을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요. 그는 영국을 떠나 남하해 서아프리카 앞으로 대서양을 지나고, 아프리카의 남단 희망봉을 돌고서 인도양을 가로질렀어요. 그리고 정비를 하느라 한 달 반 시드니에 머문 것도 잠시, 태평양으로 항해를 이어갔습니다.
최대 난관은 남미 대륙 남단에 있는 케이프혼 앞바다였어요. 영국의 전설적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1540년경~1596년)의 이름을 따서 드레이크 해협이라고 하는 이 해역은 파도가 사나워 역사상 숱한 선원이 희생되었고 그들의 영혼이 앨버트로스가 되어 날아다닌다는 바다입니다. 그는 사투 끝에 이 해협도 통과해 마침내 1967년 5월 아내가 마중 나온 플리머스항에 귀항했어요. 세계 일주 성공이었습니다. 당시 영국 국민의 환영은 대단했어요. 주민 25만명이 항구로 몰려나와 해안을 가득 메운 채 바다를 주시하는 모습은 마치 수만 마리 펭귄 떼 같았어요. 요트가 항구에 닿고, 치체스터가 내려와 "우리가 이겼다!"고 외치자 현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어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치체스터가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룬 일은 꿈을 가지고 살려는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평했어요.
- ▲ 프랜시스 치체스터가 1966~1967년 세계일주 항해 당시 탔던 16m 길이의 소형 요트 ‘집시나방 4호’가 그려진 영국 여권 속지. 치체스터는 60대 중반의 나이에 세계 최초로 홀로 요트를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기록을 세웠어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그럼 치체스터는 왜 세계의 바다를 돌았을까요? 영국인의 해양성을 증명하거나 노익장을 과시하려 한 것이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케이프혼 앞바다가 두려웠다. 뭔가 두려우면 나는 그것을 정복하려고 노력한다." 결국은 두려우니까 도전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프랜시스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담대함과 투혼은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