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슈트라우스 '봄'… 가곡으로 재탄생한 헤르만 헤세의 시

입력 : 2020.03.07 03:05

[봄을 노래한 가곡]

차분하면서 신비로운 헤세의 시에 걸맞은 서정적인 선율 작곡했죠
모차르트는 어린이 잡지 의뢰받고 생애 마지막해 '봄을 기다리며' 작곡
단순한 멜로디와 천진난만한 가사

어느덧 3월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봄은 누구에게나 기쁘고 설레는 시기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무섭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인 힘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하겠죠. 아름다운 선율과 주옥 같은 시어(詩語)로 봄의 감동을 다양하게 그려낸 예술가곡들을 들으면서 새로운 희망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생애 마지막 해 모차르트가 남긴 봄노래

먼저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모차르트(1756~1791)의 작품으로 시작할까요? 모차르트가 만든 가곡 '봄을 기다리며(Sehnsucht nach dem Frühling) K.596'은 단순한 멜로디와 친근한 분위기로 마치 동요처럼 다가와요. 실제로 과거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봄노래'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오랫동안 클래식 전문 라디오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모차르트 생애 마지막 해인 1791년 1월 한 어린이 잡지의 의뢰로 쓰인 이 곡은 비슷한 시기에 쓰인 '피아노 협주곡 27번 K.595'의 3악장과 비슷한 주제로 시작돼 흥미롭습니다. 독일 시인 크리스티안 오버베크(1755~1821)가 지은 가사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는 봄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천진난만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오월이여/ 다시 돌아와 숲을 푸르게 만들어 주렴/ 시냇가에 나가/ 작은 제비꽃 피는 걸 보게 해 주렴.'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초상화(왼쪽)와 독일 출신 작가 헤르만 헤세의 사진. 슈트라우스는 봄에 대한 낭만적인 내용을 담은 헤세의 시에 선율을 붙여 가곡 ‘봄’을 완성했습니다. 가사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초상화(왼쪽)와 독일 출신 작가 헤르만 헤세의 사진. 슈트라우스는 봄에 대한 낭만적인 내용을 담은 헤세의 시에 선율을 붙여 가곡 ‘봄’을 완성했습니다. 가사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서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위키피디아

동일한 시를 갖고 각각 다른 가곡을 만든 작곡가들도 있습니다. 독일의 목사이자 시인이었던 에두아르트 뫼리케(1804~1875)의 시는 여러 작품이 민요풍의 노래나 예술가곡으로 탈바꿈했는데요, 그중 'Er ist's(그는 그것)'라는 짧은 시에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과 오스트리아 작곡가 후고 볼프(1860~1903)가 각각 선율을 붙였어요. 슈만의 작품은 1849년 발표한 '어린이를 위한 노래 앨범' 중 스물셋째 곡입니다. 아울러 250여 개의 개성 넘치는 가곡을 남긴 볼프의 작품은 1889년 발표된 '뫼리케 가곡집' 중 여섯째 곡입니다. 두 작곡가의 작품 모두 간결하지만 봄에 약동하는 생명력과 새로운 계절을 맞는 기대감을 느낄 수 있죠.

'봄은 파란색 리본을 풀어헤치고/ 다시금 바람에 휘날리고 있네!/ 달콤하고 친근한 향기가/ 이 땅을 어루만지네/ 봄이여, 그래 너로구나! 네가 왔구나!'

헤세의 시로 봄 그려낸 슈트라우스

다가오는 봄을 엄숙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노래도 있습니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작품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봄(Frühling)'이 그것이죠. 가사는 독일 출신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가 쓴 낭만적인 내용의 시인데, 음악도 그에 걸맞게 서정성과 신비로움을 가득 담고 있어요.

'어스름한 무덤 속에서/ 너의 나무와 푸른 대기/ 너의 향기와 새의 노래를/ 오랫동안 꿈꾸었다/ 이제 너는 기적과 같이/ 찬란히 빛나는 광채와/ 경이로운 치장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봄을 노래한 프랑스 가곡으로는 레날도 안(1874~1947)의 작품을 추천합니다.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프랑스로 이주한 안은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 쥘 마스네, 샤를 구노 등에게 작곡을 배웠어요. 노래와 피아노 연주, 지휘까지 다재다능해 훗날 파리 오페라단의 감독을 맡기도 했죠. '봄(Le Printemps)'이란 이름의 가곡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작가인 테오도르 드 방빌(1823~1891)이 쓴 가사와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봄이 미소 지으며 다가오네/ 라일락 향기가 한창이네/ 봄이 소중한 여인네들은 그들의 머릿결을 풀어 달리네/ 찬란한 황금 햇살을 받고 오래된 담쟁이는 시들어버리네.'

다가올 봄에 대한 환희 담은 라흐마니노프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우렁찬 음향과 환희로 표현한 가곡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피아노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아름다운 가곡도 여럿 남겼는데요, 작품 14의 열한째 노래 '봄의 물(Spring Waters)'은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이 봄이 다가오는 것을 알려준다는 내용입니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던 물이 점차 거대한 폭포처럼 변하는 모습을 피아노가 나타내고, 성악가는 봄의 기쁨을 감격스럽게 노래하죠. 가사는 19세기 러시아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표도르 튜체프(1803~1873)의 시입니다.

'들판은 아직 흰 눈으로 덮여 있네/ 하지만 개울은 이미 봄의 분위기로 밀려들어 오네/ 달리고, 빛내고, 외치고 있어/ 그들은 굽이굽이 크게 외치고 있어/ 봄이 오고 있어, 봄이 오고 있어!'

자연과 계절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그 섭리를 반드시 지키죠. 향기로운 봄 내음을 아름다운 노래들과 함께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 어서 빨리 다가왔으면 합니다.

[소프라노 슈바르츠코프, 독일 가곡 분야서 업적 남겼죠]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여성 성악가 중 특별히 독일 가곡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을 꼽는다면 무엇보다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1915~2006·사진)를 먼저 언급해야 합니다. 베를린 국립 음대를 졸업한 후 1938년 바그너 오페라로 오페라에 데뷔한 슈바르츠코프는 1946년부터 EMI 음반사의 명프로듀서인 월터 레그와 의기투합해 많은 음반 활동을 했고, 나중에 부부가 되었어요.

슈바르츠코프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등 오페라 주인공으로도 유명했지만, 모차르트·멘델스존·볼프·슈트라우스 등 작곡가들의 가곡 분야에서도 눈부신 활동을 보였죠. 지금까지도 그녀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해석은 이상적인 기준처럼 여겨집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