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서양 오페라에 비견되는 100년 역사의 판소리 음악극

입력 : 2020.02.28 03:09

[창극]

1908년 신극 운동 이끌던 이인직이 최초의 창작 창극 '은세계' 등 공연
1950년대까지 인기 누리다 잊혀져… 최근 현대화로 해외서 주목 받아
재해석한 '변강쇠전' 파리서 공연, 그리스 비극을 창극으로 풀어내기도

서양의 오페라는 흔히 '종합예술'이라고 불립니다. 화려한 무대의 막이 오르면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 무용 등 각 장르의 예술을 펼치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 같은 종합예술이 있어요. 바로 '창극'입니다. '국극(國劇)'이라고도 불리는 창극은 창(唱)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고유 음악극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1950년 설립된 국립극장 소속 국립창극단에서 다양한 창극을 선보이고 있어요. 올해는 다음 달 6일 조선 시대 비운의 왕 단종과 그의 신하였던 방연의 역사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한 '아비, 방연'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아쉽게도 우한 코로나 사태로 잠정 연기된 상황입니다.

20세기 초 공연 양식으로 정립

창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형성된 연극 양식입니다. 판소리는 소리꾼 1명이 북을 두드리는 고수의 가락에 맞춰 춘향이도 되고 이도령도 되지만, 창극은 극을 이끌어가는 사회자 역할인 '도창'을 비롯해 여러 소리꾼이 각자 배역을 맡아 노래와 연기를 한다는 점이 가장 다릅니다. 즉 판소리와 창극은 소리꾼이 등장하고 창과 아니리(판소리에서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엮어나가는 사설), 발림(소리꾼들이 몸을 이용해 상황을 그려내는 동작) 등 판소리의 세 요소를 활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형태는 다른 공연 양식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조선 시대 비운의 왕 단종과 그의 신하 방연의 이야기를 다룬 국립창극단의 창작 창극 ‘아비, 방연’. 창극은 창을 바탕으로 음악과 연기, 춤 등이 어우러지는 우리 고유 종합예술입니다. 기존 판소리 작품을 바탕으로 한 전통 창극뿐 아니라, 파격적이고 신선한 형식을 갖춘 창작 창극이 등장하며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조선 시대 비운의 왕 단종과 그의 신하 방연의 이야기를 다룬 국립창극단의 창작 창극 ‘아비, 방연’. 창극은 창을 바탕으로 음악과 연기, 춤 등이 어우러지는 우리 고유 종합예술입니다. 기존 판소리 작품을 바탕으로 한 전통 창극뿐 아니라, 파격적이고 신선한 형식을 갖춘 창작 창극이 등장하며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국립극장

창극이 처음 생겨난 것은 신라 시대이지만, 본격적인 발전은 19세기 판소리 연구가였던 신재효(1812~1884)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신재효는 이전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판소리를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부가' '적벽가' '변강쇠전' 등 여섯 마당으로 정립했어요. 또 배역들이 노래를 나눠 부르는 형식을 시도하고, 여자 광대를 양성했습니다. 이후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를 쓰고, 신극 운동을 이끌었던 소설가 이인직(1862~1916)이 1902년 서울 정동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옥내 극장인 협률사에서 판소리를 처음으로 무대화합니다.

현재 창극의 모습은 1900년대 초부터 점차 그 모양새를 갖춥니다, 1908년 이인직은 협률사를 인수해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고, '전통 창극'이 아닌 최초의 창작 창극 '은세계'를 비롯해 여러 창극을 올립니다. 이후 1950년대 말까지 창극은 가장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리매김하지요.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공연 양식들이 인기를 끌면서, 창극의 전성기는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창극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색다른 주제와 시도로 제작된 '창작 창극'이 국립창극단을 중심으로 제작되면서 창극의 현대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존 판소리 여섯 마당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던 '전통 창극'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거나, 그리스 비극·시·서사극·근대 희곡 등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무대에 올리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소재로 한 창극 '시'(2019), 우리의 창극과 중국 경극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던 '패왕별희'(2019) 등의 작품들을 보면 창극에 대한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깨지게 됩니다.

우리 고유 음악극 형식은 유지하되,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폭넓은 주제로의 확장은 해외 공연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고 있어요. 2016년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창극 최초로 프랑스에 있는 현대 공연예술의 심장, '테아트르 드 라 빌' 극장에 초청돼 현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죠. 그리스 비극을 창극으로 해석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2018 런던국제연극제 오프닝 작품으로 초청되어 전석 매진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창극이 판소리 바탕 공연이라면 가부키는 무용, 경극은 연극 위주]

일본의 가부키와 중국의 경극 역시 우리의 창극처럼 노래와 춤, 연기로 표현하는 종합예술 공연입니다. 가부키는 16~17세기 일본 에도시대 서민 예술로 제작됐으며, 경극은 19세기 중반 민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나서 중국 황실의 지원을 받으면서 큰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창극이 판소리라는 '소리'가 중심이라면, 가부키는 '무용', 경극은 '연극'의 비중이 더 크죠. 또한 가부키와 경극은 관현악 반주에 맞추어 공연하지만, 창극은 우리 전통음악 리듬의 변화를 일컫는 '장단'에 따라 노래를 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