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일본 최고 건축상 받은 첫번째 외국인… 재일교포 '유동룡'

입력 : 2020.02.26 03:00

이타미 준

건축가 이타미 준
지난 17일 경북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는 특별한 현판식이 열렸습니다. 재일교포 2세이자 세계적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작은 사진)의 경북 경주타워 디자인을 기리는 표지석이 세워졌어요. 2007년 완공된 엑스포의 상징 경주타워는 직사각형 건물에 황룡사 9층 목탑의 실루엣을 실제 높이(82m)로 구멍을 뚫어 명소가 됐지요. 디자인 저작권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다 대법원이 지난 2011년 이타미 준의 작품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를 공표하고자 세운 표지석 제목은 '경주 타워와 건축가 유동룡'. 유동룡은 바로 이타미 준의 본명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난 그는 평생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어요. 도쿄 무사시공업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유동룡이란 이름을 고수했지만, 건축가 활동을 시작할 때 예명이 필요해졌습니다. 1968년 처음 한국을 방문할 때 이용한 오사카 이타미(伊丹) 공항에서 성을 따고, 당시 호형호제하던 작곡가 길옥윤의 마지막 이름자, '윤(潤)'을 빌려 이타미 준(伊丹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죠.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평생 경계인으로 고뇌하며 살았지만, 그의 건축은 양국은 물론 세계를 감탄시켰습니다. 2003년 유럽 최대의 동양 전문 박물관인 프랑스 국립동양기메박물관의 초대로 연 전시 '이타미 준, 일본의 한국 건축가'는 1889년 개관 이래 최초의 작가 개인전이라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2006년 한국 현대건축 1세대인 김수근의 이름을 딴 '김수근 건축상'을 받았고, 2009년엔 일본 근대 건축의 아버지인 무라노 도고를 기념해 제정한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 무라노 도고 상의 23번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외국인 신분으로 최초 수상하며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일본 건축계의 금기를 깬 하나의 사건이었죠.

이타미 준의 디자인이 반영된 경주타워(왼쪽). 오른쪽은 제주의 수(水) 박물관 전경.
이타미 준의 디자인이 반영된 경주타워(왼쪽). 오른쪽은 제주의 수(水) 박물관 전경. /경주문화관광·위키피디아
이타미 준은 초기부터 자연적 건축 재료가 지닌 물성을 활용하는 건축으로 명성을 얻었어요. 흙, 돌, 금속, 나무 등을 콘크리트와 대비시키며 사물의 감촉을 조형적으로 구현했습니다. 말년에는 사람과 자연이 맺는 관계에 집중한 온화한 결과물을 제주도에 남깁니다. 오름과 전통 민가의 지붕 선을 녹여낸 포도호텔(2001), 정육면체 모양의 바닥에 깔린 물이 타원형 천장을 통해 하늘과 맞닿게 하는 등 자연이 작품이 되는 수·풍·석(水·風·石) 미술관(2006) 등은 "건축이란 사람과 자연을 잇는 소통의 다리"라는 이타미 준 건축의 요체를 보여줍니다.

2011년 타계 이후 건축계 안에서 주로 다뤄지던 그의 존재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건축 전시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을 통해 비로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집니다. 더불어 정다운 감독이 8년 동안 제작해 지난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는 그의 삶과 건축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며 존재감을 더욱 높였어요.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