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로마의 휴일' '미녀와 야수' 속 음악, 클래식 작곡가가 썼죠

입력 : 2020.02.22 03:00

[영화음악을 만든 작곡가들]
영화감독 장 콕토 영향 받은 오리크
'노틀담의 꼽추' '굿바이 어게인' 등 영화사에 기억될 걸작서 음악 담당

교향곡으로 유명한 쇼스타코비치, 26편의 영화 속 음악 작업했어요
관현악곡 '왈츠2'는 여러 영화에 삽입

올 들어 우리를 가장 기쁘게 한 소식은 뭐니 뭐니해도 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극영화상 등 4관왕에 오르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른 분야만큼 음악상도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올해 음악상은 영화 '조커'의 음악을 만든 아이슬란드 출신 여성 작곡가 휠뒤르 그뷔드나도티르(37)가 받았습니다. 그뷔드나도티르는 클라리넷 연주자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첼로를 공부한 후, 작곡과 재즈 연주를 익혔습니다.

20세기 클래식 작곡가 중에는 그뷔드나도티르처럼 영화 음악을 넘나들며 뛰어난 성과를 남긴 이가 여럿 있습니다. 과거 작곡가들이 오페라와 연극 음악을 만들었듯, 이들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었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왼쪽)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을 맡아 엄청난 흥행을 거뒀습니다. 클래식 작곡가 그룹 '프랑스 6인' 출신 조르주 오리크가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어요. /IMDB
역사극과 어울린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20세기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영화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여 여덟 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몽타주 기법의 선구자로 알려진 전설의 명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1898~1948)과 했던 작업들로 많이 알려졌죠. 13세기, 농민군을 조직해 몽골인과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낸 러시아의 영웅 알렉산드르 넵스키의 실화를 다룬 '알렉산드르 넵스키'(1938), 16세기 후반 폭정을 펼쳤던 이반 4세의 이야기 '폭군 이반'(1944) 등에서 프로코피예프는 러시아 민요에 토대를 둔 장엄하면서도 극적인 음악을 만들어 영상과 어울리게 했습니다. '알렉산드르 넵스키'와 그의 첫 영화음악 작품인 '키제 중위'(1933) 등은 음악 자체로도 인기가 많아 따로 모음곡을 만들기도 했는데요, 지금도 클래식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됩니다.

26편 영화 속 음악 맡은 쇼스타코비치

역시 러시아 작곡가인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교향곡 15곡과 현악 4중주 등의 클래식을 작곡한 것으로 주로 알려졌지만, 무려 26편이나 되는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어요. 쇼스타코비치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토대로 러시아에서 제작한 영화 '햄릿'(1964) '리어왕'(1971) 등에 음악을 붙였는데요, 이들과 함께 1955년 제작된 '등에(The Gadfly)'라는 영화음악도 유명합니다. 등에는 소나 말에게 기생하며 괴롭히는 곤충인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항하는 이탈리아의 혁명가를 빗댄 것입니다. 이 영화에 삽입된 '로망스'는 부드럽고 달콤한 선율로 음반이나 콘서트에서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조르주 오리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왼쪽부터)조르주 오리크,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는 진지하고 난해한 음악을 쓰는 걸로 알려졌지만, 사실 듣기 쉬운 음악도 많이 썼어요. 그 대표적 작품이 '버라이어티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입니다. 이 작품 속 곡들은 왈츠, 행진곡, 폴카 등 서유럽에서 즐기는 춤곡들의 이름을 사용해 듣기 쉽게 만들었죠. 그중 특히 인기 있는 '왈츠 2'는 영화를 위해 쓰인 작품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영화 '텔 미 섬딩', '번지 점프를 하다', 미국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등에 삽입돼 알려지면서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음악이 됐습니다.

'로마의 휴일'의 작곡가 오리크

클래식 음악에서 영화음악으로 활동 분야를 바꿔 크게 성공을 거둔 작곡가도 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오리크(1899~1983)는 프랑시스 풀랑크, 다리우스 미요 등이 속해 있던 '프랑스 6인(Les Six)' 그룹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프랑스 6인'은 파리에서 활동하던 6명의 클래식 작곡가를 가리키는데, 괴짜 작곡가 에릭 사티를 정신적인 스승으로 모시고 '가장 순수한 프랑스 음악'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죠. 피아노 음악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살롱 풍의 음악을 만든 풀랑크와 달리 오리크는 30대 초반부터 영화음악에 주력했습니다. 오리크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영화 감독 장 콕토(1889~1963)를 들 수 있는데요,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영화 중 대표작은 지금까지도 계속 리메이크되는 걸작 '미녀와 야수'(1946)입니다.

오리크는 콕토의 작품 외에도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 주연의 '로마의 휴일'(1953), 앤서니 퀸 주연의 '노틀담의 꼽추'(1956),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원작으로 한 '굿바이 어게인'(1961) 등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에서 음악을 담당했어요. 오리크는 특유의 변화무쌍한 색채감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약 40년간 35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남기며 클래식 팬들뿐만 아니라 영화 팬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됐습니다.


['조스' '해리포터' 음악 만든 거장 존 윌리엄스도 클래식 공부했죠]

이번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 중에도 클래식과 영화음악에 모두 정통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미 음악상을 5차례나 받은 작곡가 존 윌리엄스(88)였습니다. 아버지가 미국 뉴욕의 재즈 드러머인 윌리엄스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로지나 레빈 교수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레빈 교수는 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밴 클라이번의 스승으로도 유명합니다.

윌리엄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조스' 'E.T.'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등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의 작업이 유명하죠. 하지만 그 외에도 '수퍼맨' '나 홀로 집에' '해리포터' 등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영화의 음악을 만들었어요. 스스로 차이콥스키,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그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도 일했었죠. 작년 3월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하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그의 작품으로 내한 콘서트를 가져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