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탁 위 경제사] 4000년 전 이집트에서 탄생… 로마 통해 유럽으로 퍼져
[발효빵]
비옥한 나일강 땅과 기술 만나 탄생
주변국 거친 빵에 비하면 혁명 수준… 강대국들의 침략 대상 1순위였죠
기원전 31년 로마가 이집트 정복, 전성기 누렸지만 빈부 격차 심해져
대중 불만 쌓이자 빵 나눠주며 달래… 포퓰리즘으로 경제 무너지고 멸망
우리나라는 2018년 합계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숫자)이 0.9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들은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러운 소식이 최근 나왔습니다. 이집트가 지난 11일 세계 14번째로 인구 1억명을 돌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에는 축하 분위기 대신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지난 30년 동안 인구가 2배 급증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집트는 빵 값 상승으로 인한 폭동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1981년부터 30년간 장기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011년 퇴진한 것도 이집트인의 주식 빵인 '아이시(Aish)'의 가격 상승에 반대하는 시위로부터 시작됐죠. 빵은 기원전 3200년 시작된 이집트 역사와 함께해 온 음식으로, 고대 이집트와 이후 이집트를 정복한 로마의 흥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집트에서 탄생한 인류 최초의 발효 빵
길이가 6650㎞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인 나일강은 매년 6월이 되면 범람했습니다. 범람한 강 주변의 흙은 에티오피아 고원의 영양분을 담고 있어 매우 비옥했어요. 고대 이집트인은 이 흙에 야생 밀의 돌연변이인 '에머밀'을 재배했습니다.
- ▲ 빵은 이집트 역사와 함께해 온 음식으로, 고대 이집트와 이후 이집트를 정복한 로마의 흥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위 사진은 이집트에서 주식으로 즐겨 먹는 빵 ‘아이시’입니다. 아래는 고대 이집트 제20왕조의 파라오였던 람세스 3세의 묘에서 나온 벽화로, 당시 빵을 만들던 과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당시 나일강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관개술과 측량술을 개발하며 발전한 이집트의 과학기술은 빵에도 적용됐어요. 이집트인은 기원전 2000년 무렵 곰팡이의 일종인 효모를 이용해 인류 최초로 발효 빵을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둥글게 부풀어오른 반죽을 진흙 오븐에 굽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빵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중해 패권의 중심지 된 '빵의 나라'
이 맛있는 빵 때문에 이집트는 고대 지중해 패권의 중심지가 됩니다. 주변 국가에 이집트 빵은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들이 먹는 빵은 고작 철판이나 돌에 반죽을 구워 만든 납작하고 딱딱한 빵이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이집트는 중동과 지중해 인근에서 강력한 국가들이 탄생할 때마다 침략 대상 1순위가 됩니다. 기원전 7세기 아시리아를 시작으로 페르시아, 마케도니아를 거쳐 기원전 31년 로마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했어요. 로마는 이집트를 차지하고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며 최대 전성기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맞게 됩니다.
로마는 이집트 밀을 품종 개량해 유럽 전역에 퍼뜨렸습니다. 또 이집트의 진흙 오븐을 개량한 벽돌 오븐을 이용해 만든 다채로운 빵도 함께 전파했습니다. 로마는 로마법과 기독교 같은 서양 정신의 기초와 함께 서양 식탁의 기초도 만들었던 것입니다.
◇빵으로 흥하고 빵으로 망한 로마
그러나 막대한 풍요를 누리던 로마는 안으로 곪고 있었습니다. 점차 귀족들이 대농장 '라티푼디움'을 만들면서 중산층이 붕괴됐어요. 기원전 120~130년경 호민관이었던 그라쿠스 형제는 유력자들이 과도하게 점유한 땅을 부분적으로 재분배하고자 했지만, 이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죠. 이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삼두정치가 시작되죠. 이후 치열한 권력 다툼을 거쳐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패권을 잡고 초대 황제가 되면서 로마의 정치 구조는 기원전 6세기부터 이어온 공화정에서 황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로마 황제들은 공화제 폐지와 빈부 격차로 인한 대중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해 '빵과 서커스'라는 우민화 정책을 실시합니다. 시민권을 가진 이들에게 빵과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볼 수 있는 표를 주며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자 한 것입니다. 정책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은 식민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충당했지만, 식민지 확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로마 경제는 붕괴하기 시작했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 침공으로 멸망했습니다.
[나일강 풍요 누리던 이집트… 기후변화로 곡물 수입국 됐죠]
유럽에 따끈따끈한 빵을 전해준 이집트는 로마 멸망 뒤에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이집트는 동로마제국, 이슬람제국, 영국 등의 지배를 받다가 1922년 비로소 독립했습니다. 독립 후 이집트는 한동안 나일강의 풍요 덕에 곡물을 자급자족했습니다. 그러나 인구 급증과 지구온난화 탓에 나일강 수량이 줄면서 1970년대부터 곡물 수입국이 됐습니다. 외교부 자료를 보면, 이집트는 2016년 1200만t의 밀을 수입한 세계 최대의 밀 수입국이었습니다. 빵으로 서양 문명의 기초를 제공했던 이집트에 가혹한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