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아즈텍 침략한 스페인, 1520년 원주민 반격에 참패

입력 : 2020.02.19 03:00

['슬픈 밤' 전투]
16세기 스페인 귀족 출신 코르테스, 現 멕시코 지역 '아즈텍 제국' 침략
아즈텍인들은 그를 신으로 여겼죠

스페인군이 아즈텍 귀족 살해하자 총·칼에 겁먹었던 아즈텍인들 폭발
스페인군 수백명 죽고 후퇴했죠

수십 년 전 멕시코에서 발견된 금괴가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이 약탈하려던 아즈텍(Aztec) 제국의 보물인 것으로 최근 확인됐어요. 지난달 10일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INAH)는 1981년 멕시코시티 건설 현장에서 발견된 금괴 성분을 분석하고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진은 이 금괴가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1520년 아즈텍 제국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후퇴할 때 가져가려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어요. 이날 일어난 전투를 스페인에선 '슬픈 밤(스페인어로 La Noche Triste)'이라고도 부르는데요,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진 걸까요?

침략자를 신으로 여긴 아즈텍

16세기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 강자로서 전성기를 누렸어요. 식민지 확대를 통해 무역로를 확보하고자 하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죠. 그 중심에 섰던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에르난 코르테스였어요. 스페인 귀족 출신인 그는 쿠바를 식민지로 만드는 데 참여하며 입지를 높여갔고, 이후에는 직접 새 식민지를 찾는 원정대를 이끌었습니다. 아즈텍 문명이 존재하던 지금의 멕시코를 새 식민지로 만들려는 것이었지요.

1520년 아즈텍 원주민과 스페인 침략군 사이에 벌어진 '슬픈 밤' 전투를 묘사한 그림.
1520년 아즈텍 원주민과 스페인 침략군 사이에 벌어진 '슬픈 밤' 전투를 묘사한 그림. 전투에서 패배한 스페인군은 수백 명의 병사가 희생됐고, 아즈텍에서 가져오려던 엄청난 보물도 모두 잃게 됐습니다. 이때의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 '슬픈 밤'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519년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그곳을 침략했을 때, 아즈텍 문명은 화려하게 빛나던 시기였어요. 코르테스는 멕시코 동남부 연안에 상륙한 이후 여러 전투에서 이기면서 내륙까지 진출했고, 마침내 1519년 11월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도착했어요.

당시 아즈텍 제국의 황제였던 목테수마는 테노치티틀란을 둘러싼 호수를 가로지르는 둑길까지 나와 코르테스 일행을 맞이했어요. 아즈텍 제국에는 먼 옛날에 떠났던 신이 다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내용의 전설이 전해져 왔는데, 코르테스를 바로 그 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코르테스도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세력을 키워갔어요.

귀족 살해 사건으로 반발 커져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목테수마와 코르테스, 둘의 평화 관계는 깨지게 됐어요. 현지인들이 해안 지역에 남아 있던 스페인 병사들을 살해한 사건을 구실로 코르테스의 군대는 권력과 재물을 탈취했어요. 이어 코르테스는 무력으로 목테수마를 포로로 붙잡았습니다.

아즈텍 제국
그러다 1520년 4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쿠바 총독이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견제할 정도로 세력이 커진 코르테스를 잡기 위해 멕시코로 진압군 1400명을 파견하였어요. 코르테스는 이들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듣고 목테수마를 감시할 병력 일부만을 남긴 채 나머지를 이끌고 나섰어요. 결국 그는 진압군을 격파하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런데 코르테스가 잠시 비운 사이 테노치티틀란에 남아 있던 스페인 병력이 축제 기간 중 아즈텍 귀족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스페인군의 총과 말, 칼에 겁먹어 참고 있던 아즈텍인들은 폭발했어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코르테스는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탈출뿐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감행했어요.

신대륙에서 겪은 가장 큰 패배

1520년 6월 30일 자정 무렵, 코르테스의 군대는 금과 은 등을 챙겨 몰래 도시 밖으로 나왔어요. 둑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이동하던 중 강에서 물을 긷던 한 아즈텍 여인이 이들을 발견하고 적들이 도주하고 있다고 소리쳤어요. 이 소식을 들은 아즈텍인들은 카누를 타고 이들을 사방에서 에워쌌어요. 아즈텍인들은 스페인인들을 향해 창을 던졌고, 코르테스 군대는 이에 맞서 총도 쏘았어요. 다음날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양측 모두 많은 희생이 발생했지요. 코르테스 군대 중에는 자신들이 나르던 금의 무게에 못 이겨 물속으로 가라앉은 병사도 많았어요. 일부 병사는 피신 길에 오르지도 못한 채 아즈텍인들의 손에 잡혀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말았어요.

코르테스를 포함해 도주에 성공한 일부 스페인인들은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스페인 병사 수백 명과 많은 원주민 동맹군을 잃었어요. 많은 이의 희생뿐만 아니라 가지고 오려던 엄청난 보물들을 잃은 데 대한 슬픔으로 이후 스페인에서는 이 사건을 '슬픈 밤'으로 불렀어요. 슬픈 밤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가 유럽에 알려진 이래, 유럽인들의 가장 큰 패배이자 원주민들의 가장 큰 승리였습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