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기대와 강요'라는 수레바퀴에 짓눌린 어느 수재의 죽음

입력 : 2020.02.19 03:00

수레바퀴 아래서

지치면 안 돼.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소설 '데미안'으로 널리 알려진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청춘을 소재로 한 책을 여럿 냈습니다. 기존의 사회체제하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의지와 자유의 소중함을 전하고자 했어요. 이 중 1906년에 출간한 '수레바퀴 아래서'는 그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입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순수한 소년 '한스'가 억압적 교육 체제에 좌절하고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는 순수한 소년 '한스'가 억압적 교육 체제에 좌절하고 결국 불행한 죽음을 맞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픽사베이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시골 마을의 평범한 집에서 태어난 소년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공부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데, 명예욕이 강했던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의 강요로 신학교(神學校) 입학을 위해 공부에 몰두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즐겼던 낚시와 수영은 잠시 포기한 채, 한스는 매일 창백한 얼굴로 밤늦도록 책을 들여다보죠.

마침내 신학교 입학 시험날, 한스는 차석으로 합격하며 마을의 자랑이 됩니다. 하지만 성격이 소극적이었던 한스는 낯설고 강압적인 신학교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자신과 달리 반항적인 성격의 친구 하일너를 만나 잠시 해방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하일너가 퇴학당하면서 크게 좌절하게 되죠. 결국 신경쇠약에 걸린 한스는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스는 어릴 적 친구 아우구스투스가 일하는 시계 부품공장의 견습공이 되지만, 몸이 약하고 일을 해본 경험도 없어 공장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런 한스를 두고 사람들은 '신학교 대장장이'라며 업신여기죠.

그러던 어느 일요일, 한스는 공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취한 채 강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일하게 그를 이해하는 어른이었던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 아저씨는 교장선생님과 학교 교사들을 가리켜 "한스를 죽인 공범"이라고 비판합니다.

한스의 이야기에는 유년 시절 헤세가 겪었던 좌절과 고통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헤세는 어린 시절 명문 신학교에 진학했지만, 신경쇠약으로 1년 만에 중퇴했습니다. 이후 시계 부품공장과 서점을 전전하며 일하던 헤세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삶의 안정을 찾았어요.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섬세한 심리묘사 덕에 누구라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한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소설 속 '수레바퀴 아래'는 실패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한스는 아버지와 선생님, 마을 어른들의 강요로 수레바퀴를 굴리듯 성공을 향해 내몰리지만, 그러한 억압은 오히려 수레바퀴가 되어 한스를 짓누릅니다. 강압적인 사회체제가 한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어떠한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소설입니다.


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