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청각장애인 수지의 특별한 산책법… 마음으로 듣는 세상의 모든 소리

입력 : 2020.02.14 03:07
산책을 듣는 시간

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글|사계절|180쪽|1만1000원

수지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 번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수지는 상상 속에서 그 어떤 소리도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들리진 않아도 소리를 느낄 수 있었죠. 수지가 느끼는 소리에는 '구름이 흘러가며 내는 소리' '물결이 번져나가는 소리'도 있어요. 그러니까 수지는 귀로 듣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예요.

수지는 들리지 않는 귀 때문에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수지를 불편해하고 동정했어요. 수지는 학교에서 만난 한민이란 친구에게 관심이 생겼어요. 한민이는 전색맹이라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색을 구분할 수 없죠. 안내견 마르첼로와 늘 한 몸이 되어 다니는 그의 모습은 수지에겐 더없이 멋져 보였어요. 수지와 한민과 마르첼로 셋은 서로 가장 잘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친구가 됩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수지가 원하지도 않았던 인공 와우 수술을 받게 돼 소리를 듣게 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완벽했던 침묵의 세계에서 불완전한 소음의 세계로 옮겨진 수지에게 세상은 갑자기 아주 낯설고 불편한 곳이 됐어요. 사람들은 소리가 들리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수지는 자신의 고요함을 빼앗긴 것이 화나고 슬퍼요. 그 와중에 사랑하는 할머니까지 돌아가십니다. 할머니는 수지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어요. '무엇이든 완벽히 이해하지 않아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인정하고 남겨 두어도 된다.' 수지는 이 말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지요.

수지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요. 그러다 아주 놀라운 발상을 하게 됩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 사업'이예요. 수지는 들리지 않았던 자신처럼, 소리를 상상하는 산책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멋진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산책을 듣는 시간'은 눈과 귀가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듣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아름다운 청소년 성장소설입니다.


김성신 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