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공화주의자와 파시스트의 내전… 50개국의 국제전으로 번져
입력 : 2020.02.12 03:00
[스페인 내전]
1936년 인민전선에 정권 넘어간 후 프랑코 장군과 군부 등이 반란 일으켜
여기에 나치·무솔리니까지 가세했죠
시민과 50개국이 인민전선 도왔지만 결국 1939년 프랑코 군대에 항복
전쟁 중 시민 학살 소식 들은 피카소… 그 참상 알리려 '게르니카' 그렸대요
지난 1월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작품 '젊은 여인의 두상'(1906)을 몰래 스페인에서 스위스로 반출하려던 금융인 하이메 보틴(83)이 670억원이 넘는 벌금형을 받았어요. 보틴은 1977년 영국 런던에서 이 그림을 사들여 스페인에 들여왔죠. 그런데 스페인 정부는 이 그림이 국가의 중요 문화유산이어서 다시 외국에 가져갈 수 없다며 이런 강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는지 보여준 사건이죠.
피카소 작품은 미학적 가치뿐 아니라, 그가 지녔던 정치적 소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대표작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의 참상을 통해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아낸 그림입니다. 스페인 내전은 어떤 사건이며,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어떻게 그리게 됐을까요?
◇계급·이념 갈등에서 시작된 내전
스페인은 20세기 초까지도 왕이 다스리는 국가였어요. 교회세력과 귀족, 군부가 부와 토지를 독점하고 있어 빈부 격차가 극심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계급 간 대립이 심화하자 극단적인 무정부주의나 파시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져 사회는 점점 불안해졌어요.
피카소 작품은 미학적 가치뿐 아니라, 그가 지녔던 정치적 소신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대표작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의 참상을 통해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담아낸 그림입니다. 스페인 내전은 어떤 사건이며,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어떻게 그리게 됐을까요?
◇계급·이념 갈등에서 시작된 내전
스페인은 20세기 초까지도 왕이 다스리는 국가였어요. 교회세력과 귀족, 군부가 부와 토지를 독점하고 있어 빈부 격차가 극심했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계급 간 대립이 심화하자 극단적인 무정부주의나 파시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져 사회는 점점 불안해졌어요.
- ▲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린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 스페인 내전 당시 북부 도시 게르니카가 나치의 폭격으로 파괴되면서 고통받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거대한 캔버스 안에 대상을 회색 조의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해 혼란스럽고 비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소피아왕비 예술센터
◇50여개국 가세한 국제전으로 번져
여기에 이웃 국가까지 가세합니다. 파시스트(전체주의)를 내세운 나치 독일,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과 포르투갈이 프랑코를 지원했죠. 반대편에선 소비에트 연방과 각국의 반파시즘 인사들이 의용군 집단인 국제 여단을 만들어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했어요. 내전이 국제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한 겁니다. 1939년 전쟁이 막을 내릴 때까지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자원한 4만여 명이 국제 여단에 참여했어요.
전쟁은 프랑코 반란군의 승리로 금방 막을 내릴 줄 알았으나, 시민들이 정부를 위해 자발적으로 무장해 싸우면서 장기화했어요. 하지만 무솔리니와 히틀러에게 자금과 군대를 적극적으로 지원받은 프랑코에 비해 인민 전선은 물적으로나 인적으로나 열세에 있었습니다.
결국 1939년 프랑코 장군과 우익 정당 연합체인 팔랑헤 군대가 마드리드에 입성하고 4월 1일 공화파 정부가 항복합니다. 3년 동안 스페인을 둘로 갈라지게 했던 내전이 끝난 것이죠. 전쟁 희생자 수는 40만~60만명에 달하며,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됐습니다. 내전이 끝나고서도 인민전선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숙청되는 등 피바람은 계속됐습니다.
◇세계에 내전의 참상 알린 게르니카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피카소는 파리 만국 박람회의 스페인관에 전시될 작품을 의뢰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도시 게르니카가 나치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1500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어요. 그는 전쟁의 참상과 나치의 잔혹성을 알리기 위해 '게르니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349×775㎝ 크기의 거대한 벽화에는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상처입은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어요. 구체적인 참상은 드러나 있지 않지만, 정형적이지 않은 대상 표현과 회색 조의 색상이 혼란스럽고 괴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림은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면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죠.
[내전에서 이긴 프랑코, 36년간 스페인 철권통치]
반란군의 승리를 이끈 프랑코는 수도 마드리드에 입성한 1939년 4월부터 1975년 11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36년간 스페인을 통치합니다. 1938년 자신이 원하는 모든 법률을 공포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스스로 부여했고, 반프랑코 세력으로 분류되는 조직과 개인을 탄압했습니다. 프랑코의 철권통치가 끝난 후 그의 권한을 이어받게 된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신(新)헌법을 제정하고 의회 개혁을 이룩해 스페인을 민주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