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여권으로 세상 읽기] 1800년대 '호주판 카우보이'… 지금은 로드 트레인이 대신하죠

입력 : 2020.02.11 03:05

호주의 '드로버(Drover)'

호주의 국민적 애창곡인 'I am Australian(나는 호주 사람입니다)'에는 제목처럼 여러 유형의 호주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태고의 시대부터 수만 년 살아온 원주민, 1788년 이래 죄수로 추방되어 호주 땅에 정착한 영국계 개척민, 금광을 찾아 호주에 온 이민자 등이죠. 모두 호주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입니다.

이 중 호주 여권의 한 페이지에도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 위에서 채찍을 들고 가축 떼를 몰고 있는 사내, 바로 '드로버(Drover)'입니다. 호주의 드로버는 거친 호주 땅을 무대로 1800년대 주로 활약했던 사람들입니다. 호주는 내륙의 대부분이 건조한 불모지 '아웃백(Outback)'과 이보다 조금 여건이 나은 황무지 '부시(Bush)'로 이뤄져 있는데, 드로버는 아웃백에서 방목한 수천~수만 마리의 소나 양 등 가축 떼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했어요. 가축을 팔기 위해 도회지의 시장까지 이동하기도 하고, 계절에 따라 다른 목초지로 옮기기도 했습니다. 2008년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를 보면 호주 출신 배우 휴 잭맨이 드로버 역할을 맡아 이들의 일상을 잘 보여줍니다.
드로버가 가축 떼를 몰고 이동하는 장면이 그려진 호주 여권 페이지(왼쪽). 오른쪽은 오늘날의 드로버라고 할 수 있는 대형 트럭 ‘로드 트레인’이 그려진 호주 여권 페이지입니다.
드로버가 가축 떼를 몰고 이동하는 장면이 그려진 호주 여권 페이지(왼쪽). 오른쪽은 오늘날의 드로버라고 할 수 있는 대형 트럭 ‘로드 트레인’이 그려진 호주 여권 페이지입니다.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드로버들이 말을 타고 가축을 이동시키는 모습은 얼핏 목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직접 일을 하는 입장에선 무척 고된 노동이었어요. 몇 달이 넘는 이동 기간 동안 야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가축 떼를 지키고, 가축이 아프거나 체중이 줄면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시도 방심할 수 없었어요.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2만 마리 소 떼를 이끌고 무려 3000㎞ 여정을 완수한 드로버도 있었다고 하니 대단하지요.

드로버는 도로가 발달하고 철도가 대량 수송을 담당하게 되면서 점점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드로버에 비유할 만한 존재가 호주를 누비고 있어요. 호주 여권의 다른 한 페이지에 실린 대형 트럭이 그 주인이죠. 트럭 한 대에 여러 개의 트레일러가 달린 모습이 마치 기차와 같다고 해서, 도로 위의 기차, 즉 '로드 트레인(Road Train)'이라고 불립니다.

드로버가 말을 타고 가축 행렬을 이동시켰다면 오늘날의 로드 트레인 운전수들은 통상 3개, 또는 그 이상의 트레일러를 달고 화물을 운반합니다. 화물은 가축뿐 아니라 석유와 가스, 광물, 생활용품, 중장비 등 다양합니다. 특히 아웃백의 광산에서 채굴되는 철광석이나 석탄 같은 광물은 광물 수출이 산업의 큰 비중을 점하는 호주 경제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자를 이동시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합니다. 세계 6위의 국토 면적(774만1220㎢)을 가진 드넓은 호주에서 로드 트레인은 백여 년 전 드로버가 그랬듯이 호주의 곳곳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청훈 '비행하는 세계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