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쇼팽 '빗방울 전주곡', 폭우 속 연인 상드 생각하며 썼죠

입력 : 2020.02.08 03:00

[음악가들의 연인]
비는 오는데 외출한 연인 오지않자 걱정된 쇼팽의 마음 담긴 피아노곡
조르주 상드는 프랑스 유명 작가로 쇼팽과 9년 동안 만나며 도움 줬죠

리스트는 연상의 연인과 여행하며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 를 썼어요

다음 주 금요일은 많은 이가 기다리는 '밸런타인 데이'입니다. 2월 14일은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결혼이 금지돼 있던 군인들을 불쌍히 여겨 몰래 결혼식을 올려주다 죽음을 맞은 발렌티노 신부를 기념하는 날로 알려져 있어요. 지금처럼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풍습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운명과 같은 존재와 만남은 누구에게나 인생 전체를 바꿔 놓는 계기가 되죠.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사 속 인물들 역시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자신의 예술을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빗속 연인 걱정하며 쓴 '빗방울 전주곡'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폴란드의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인은 1838년부터 약 9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조르주 상드입니다. 상드는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 잘나가던 여류 작가로, 남장을 즐기고 시가를 피우는 등 자유분방한 인물이었어요. 쇼팽에게도 먼저 적극적으로 구애해 그의 마음을 얻어냈죠. 상드는 쇼팽의 폐병을 호전시키기 위해 스페인 마요르카섬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여기서 쇼팽은 그 유명한 '빗방울 전주곡'을 작곡합니다. 전주곡이란, 본래 어떤 음악 전에 나오는 음악을 뜻하나, 19세기 이후엔 주로 피아노 연주를 위해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곡된 독립적인 작품을 의미합니다. 상드가 외출한 날 폭우가 내리자, 숙소에서 빗소리를 듣던 쇼팽은 빗속에서 고생하고 있을 상드를 생각하며 이 곡을 지었다고 합니다. 쇼팽의 전주곡 24개 중 나머지 곡도 대부분 마요르카섬에 머물던 시절 작곡한 것으로 보입니다.

남장을 한 작가 조르주 상드(왼쪽)와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초상화.
남장을 한 작가 조르주 상드(왼쪽)와 음악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초상화.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은 9년간 연인 관계를 유지했던 상드의 헌신으로 '빗방울 전주곡' '화려한 폴로네즈'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여러 작품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후에도 상드는 쇼팽을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 노앙의 별장으로 데려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요. 쇼팽은 노앙에서도 '환상 폴로네즈' '강아지 왈츠' 등 명곡들을 작곡하지만, 병약한 체질의 쇼팽과 여장부 같은 기질을 지닌 상드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며 1847년 연인 관계가 끝나게 됩니다.

◇밀월여행에서 탄생한 '순례의 해'

음악가의 사랑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어요. 바로 당대 피아노의 황제로 군림했던 헝가리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죠. 리스트는 외향적인 성격과 화려한 연주 스타일로 여성 귀족들에게 인기가 높았는데, 23세 리스트가 사랑에 빠진 대상은 마리 다구라는 연상의 백작 부인이었어요. 두 사람은 1834년부터 동거를 시작해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에 밀월여행을 다닙니다. 이 여행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리스트의 유명한 피아노곡집 '순례의 해'가 탄생했죠. 두 사람은 10여년간 연인으로 지내며 자식도 셋이나 낳지만, 리스트가 지나치게 많은 연주 여행을 한다는 이유로 갈등을 겪다가 헤어지게 됩니다.

그 후 리스트의 연인이 된 사람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카롤리네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가톨릭 신자로서 공감하는 면이 많아 결혼을 원했지만, 결국은 헤어지게 됐죠. 실의에 빠진 카롤리네는 홀로 수도원에 들어가 여생을 보내고, 리스트 역시 성직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결국 리스트는 1865년 신부가 되어 여생을 보냈습니다.

◇편지가 낳은 위대한 교향곡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의 연애 이야기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37세의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에게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받습니다.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한 결혼 생활은 단시간에 불행하게 끝나버리고, 차이콥스키는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습니다.

이때 등장한 여인이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이었습니다.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그녀는 차이콥스키에게 상당한 액수의 후원금을 보내주며 물심양면으로 도왔어요. 두 사람은 약 13년 동안 10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음악과 인생을 함께 나누었지만, 특이하게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보통의 연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와 존경이 늘 함께했죠. 차이콥스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교향곡 4번은 폰 메크에게 처음으로 헌정한 곡입니다. 이후에도 폰 메크의 후원으로 작곡에 몰두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1890년 폰 메크가 갑자기 후원을 끊겠다는 통보를 하면서 차이콥스키는 큰 절망에 빠졌다고 해요. 그는 3년 뒤 비탄과 격정을 담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 6번 '비창'을 완성하고,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죠.

대작곡가들과 함께했던 여인들은 비록 음악사에서는 조연이었을지 모르나, 걸작이 탄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악보로 그려진 아름다운 선율들 사이로 초콜릿의 달콤 쌉싸름한 맛보다 더 깊은 사랑의 향이 느껴집니다.


[베토벤 편지 속 '불멸의 연인' 아직도 풀리지않은 미스터리]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연애사로 후대의 관심을 모으는 음악가도 있습니다. 바로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그 주인공이죠.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 안톤 신틀러는 베토벤의 책상 서랍에서 편지 세 통을 발견해요. 편지에는 이름 대신 '내 불멸의 연인에게'라고 쓰여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후대 연구가들은 베토벤의 주변 여인 중 '불멸의 연인' 후보를 추려냅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레슨을 했던 귀족 여인 줄리에타 귀차르디, '엘리제를 위하여'를 헌정받은 사람으로 알려진 테레제 브론슈비크, 베토벤 친구 프란츠의 아내였던 안토니 브렌타노 등이 꼽히죠.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도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 흥미로운 내용을 추리극 형식으로 만든 영화 '불멸의 연인'(1994)도 인기를 끌었죠.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