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아동을 기형으로 만들어 인신매매… 17세기 귀족사회 잔혹성 고발

입력 : 2020.02.05 03:00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가족을 떨쳐 버리려는 가난한 아비부터 노예 번식장을 운영하는 나리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파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다. 인간을 판매한다는 것이 지극히 간단한 일이었다.

최근 뮤지컬로 관객의 사랑을 받는 '웃는 남자'는 '레 미제라블'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1802~1885)가 1869년 쓴 작품이에요.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 여러 걸작을 남겼지만, 위고 스스로는 '웃는 남자'에 대해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쓴 적이 없다"며 아꼈다고 해요.

프랑스 감독 장 피에르 아메리스의 2012년 영화 '웃는 남자'.
프랑스 감독 장 피에르 아메리스의 2012년 영화 '웃는 남자'. 어릴 적 인신매매단에게 납치돼 입이 찢어져 기괴한 미소를 지니게 된 남자 그윈플레인(가운데)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씨너스엔터테인먼트
주인공 그윈플레인은 어려서 콤프라치코스에게 납치되어 입이 찢겨 기괴한 미소를 갖게 된 소년입니다. 콤프라치코스는 스페인어로 '어린아이를 사고파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유괴한 아이들을 기형으로 만들어 파는 인신매매 집단이었어요. 콤프라치코스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을 장난감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시 귀족들은 얼마나 더 흉측한 모습을 한 장난감을 가졌는지 겨루며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곤 했어요. 이들 덕에 콤프라치코스의 행위는 곳곳에서 성행했습니다.

그런데 그윈플레인이 열 살이 됐을 무렵, 나라에서 아이들을 기형으로 만들어 파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해 엄벌을 내리게 돼요. 콤프라치코스 일당은 도망치면서 그윈플레인을 내다 버리고, 그는 눈보라 속에서 헤매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여인의 품에서 작은 여자아이 데아를 발견해 구조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우연히 약장수 우르수스의 눈에 띄어 그의 보살핌을 받게 되죠. 추위 때문인지 데아는 앞을 보지 못했는데, 우르수스는 기형적인 얼굴을 한 그윈플레인과 눈먼 데아를 앞세운 공연으로 큰 인기를 거두게 됩니다.

급기야 여왕의 이복 여동생인 조시언도 그윈플레인의 공연을 찾아오게 돼요. 그는 곧바로 그윈플레인의 기이한 얼굴에 빠지고, 자신의 외모와 지위를 앞세워 그를 유혹합니다. 이후 그윈플레인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이 본래 남작의 아들이라는 신분의 비밀도 알게 되지요. 하루아침에 고귀한 신분과 최상류층 여인을 얻게 된 그윈플레인. 그러나 그는 이내 화려한 삶에 환멸을 느낍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데아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죠. 다시 함께하게 된 데아와 그윈플레인은 과연 행복을 찾았을까요?

'웃는 남자'의 줄거리는 흥미진진하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랍니다. 콤프라치코스와 귀족의 행태 등 17세기 유럽 사회의 적나라한 풍경을 고발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죠.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참된 사랑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 필로소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