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유겸의 스포츠로 세상 읽기] 1위팀 오르면 다음 게임 반드시 진다?… 근거 없는 징크스

입력 : 2020.02.04 03:00

1등의 저주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미국 대학농구 2019-2020 시즌에서는 '1등의 저주'가 단연 화두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여러 언론 매체에서 매주 대학농구 1부리그에 소속된 350여 팀의 순위를 매겨 발표합니다. 이 중 '기자단 연합 투표'와 '감독 투표'가 가장 전통과 권위를 인정받는데, 보통 1위부터 25위까지 선정합니다. 미국에선 대학농구 인기가 프로스포츠 못지않아, 자연히 이 순위에 관한 관심도 대단히 큽니다. 25위 안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대학이 대부분이고, 단 한 번이라도 1위에 올라본 대학은 극소수 농구 명문대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1위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죠.

지난 1일 미국 캔자스대학교 앨런 필드하우스에서 열린 캔자스대 농구팀과 텍사스 공과대 농구팀의 경기 장면.
지난 1일 미국 캔자스대학교 앨런 필드하우스에서 열린 캔자스대 농구팀과 텍사스 공과대 농구팀의 경기 장면. 최근 미국 대학농구에서는 유독 평가 1위에 선정된 팀이 선정 직후 경기에서 패배하는 일이 잦아 '1등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어요. /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일에 요즘 '저주'라는 딱지가 붙었습니다. 유독 이번 시즌에서 '기자단 연합 투표'와 '감독 투표'에서 모두 1위에 오른 팀이 직후 경기에서 지는 일이 반복됐거든요. 캔자스 대학, 미시간 주립대학, 켄터키 대학, 듀크 대학, 그리고 루이빌 대학이 줄줄이 1위에 오르자마자 경기에 지고 곧바로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는 '1등의 저주'라는 말이 나왔죠. 1위에 오르면 팀이 자만에 빠져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1등의 저주'는 사실 '귀인 오류'의 일종이에요. '귀인'이란 어떤 일의 이유나 원인을 알아보는 것을 뜻하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귀인 욕구가 무척 강합니다. 만약 이유를 확실히 알아내지 못하면, 확인되지 않은 원인을 일단 갖다 붙이는 경우도 허다해요. 그러다 보니 잘못된 이유를 찾아 믿어버리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경기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요인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객관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고요. 이럴 경우 사람들은 가장 눈에 띄는 이유를 원인으로 믿고 싶어 합니다. 어떤 팀이 1위 팀이고, 1위에 오른 직후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가장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죠.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단순하고 명쾌한 정보를 원인으로 삼아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1위에 오른 것이 패배의 직접적 원인임을 증명할 객관적 근거는 없습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어떤 팀이 1위에 오른 이후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은 평소 승률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어요. 1위 팀이 다른 순위에 올랐을 때보다 더 자주 진다는 근거도 없고요. 1부리그 상위권 팀이라면 대체로 실력이 비슷합니다. 누가 언제 이기더라도 이상할 일이 없지만, 1위 팀이 지면 다른 팀이 졌을 때보다 더 눈에 띄게 됩니다. 결국 올 시즌에는 1위 팀이 유독 1위에 오른 직후 경기에서 패배한 일이 잦았을 뿐입니다.

한 치 앞 결과를 알 수 없는 스포츠 세계에서 생겨난 별별 징크스와 저주는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맹신하다 보면 선수와 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돼요. 미신은 미신일 뿐,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선수들의 정직한 땀과 노력입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